캔버스의 시인을 위한 노트

-이영철, 사랑이 온다(2014. 해조음)

 김 선 굉(시인)

대구문화재단 예술담론계간지 <대문> 2014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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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창을 활짝 열기만 하면 꿈을 꾸듯, 춤을 추듯 사랑이 온다. 이것은 이영철의 두 번째 저서 사랑이 온다가 던지는 선언적 아포리즘이다. 화가는 그림으로 말하는 사람이다. 그의 작품 세계가 이미 오래 전부터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이영철은 굳이 글로써 이렇게 말하고 있다. 마음의 창을 활짝 열기만 하면 꿈을 꾸듯, 춤을 추듯 사랑이 온다.

이영철은 캔버스의 시인이다. 이 책은 이미 오래 전부터 마음 속으로 되뇌여 오던 말을 명제화하게 했다. 되뇌이는 것과는 달리 무엇을 선언적으로 말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림으로 자연과 인생과 삶을 노래하는 화가를 두고 시인이라고 하는 것 또한 위험하다. 그러나 내 직관은 그를 캔버스의 시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린 꽃은 시들지 않는다(2011, 해조음)에 이어 펴낸 이 책은 그의 작품 세계가 위로(comfort)에서 치유(healing)로 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내가 지금 두 권의 책을 통해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이 방향성이다. 특히 사랑이 온다는 작가 자신이 힐링 북이라고 할 만큼 힐링으로 미학적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그의 글이 산문에서 운문으로, 스토리에서 아포리즘으로 나아가는 것 또한 더 따뜻한 위로와 더 적극적인 치유를 위해서다.

이 책은 그린 꽃은 시들지 않는다에 이는 두 번째 책이다. 얼핏 보면 한 권으로 크게 묶어도 될 만큼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에세이에서 시로, 이야기에서 아포리즘으로 나아가는 의미 있는 변화가 있다. 그의 시선이 인간에서 자연으로, 삶에서 환타지로, 스토리에서 시로 무게 중심이 서서히 이동해 가고 있다. 그의 시선이 인간에서 자연으로, 일상적 삶에서 환타지로 나아가면서 글의 의미 비중이 더 커지고 있으며, 이것은 작가의 정신이 위로에서 치유로 가고 있다는 대단히 중요한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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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이데올로기 관점에서 그는 문제 작가는 아니다. 황금 분할된 캔버스 위에 평범한 세계를 담고 있는 구상의 세계다. 우주론적 상상력으로 자연을 예찬하면서 보일 듯 말 듯 사람을 자연의 일부로 아로새기는 표현주의적 세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창작 에너지는 캔버스에 따뜻하고 아름다운 마음과 함께 우리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힘과 기를 머금고 있다. <그린 꽃은 시들지 않습니다. 정신이 키우고 가꾼 꽃이니까요.> 작가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그의 작품은 우리의 가슴 깊숙이 흐르고 있는 추억과 우정과 사랑과 그리움의 강물을 들여다보게 하는 주술이 담겨 있다.

작품 사랑이 온다, Here comes love(60cm*50cm, Acrylic on canvas, 2014)는 별이 빛나는 캄캄한 밤하늘 아래 펼쳐진 들꽃 벌판을 펼쳐 보여주고 있다. 대담한 수평 분할로 강화된 들판이 끝없이 펼쳐져 있으며, 들판 가득 개망초꽃이 흐드러져 있다. 사람의 마음을 아득하게 하는 몽상적 풍경이다. 보는 사람으로 아여금 아, 내 가슴에도 저런 들판이 있었지, 하면서 눈을 감고 추억의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이 작품은 좀더 가까이 다가서서 자세히 보라고 말하고 있다. 숨은 그림 찾기처럼 들판 양쪽 끝에서 마주보며 걸어오는 두 사람이 있다. 사랑이 오고 있는 것이다.

작업으로 치면 대단히 노동집약적이다. 저 별들을, 저 꽃들을 일일이, 그야말로 일일이 화폭에 아로새겨나가는 노동 위로 그는 사람을, 사랑을 띄워올리는 것이다. 사랑을, 제대로 된 사랑을 제대로 띄워올리기 위해서는 이보다 더 힘든 노동이라도 못 할 게 없다는 작가 정신이 방전된 우리의 삶에 강한 에너지를 충전해 주고 있다. 이러한 그의 즐거운 노동은 이 책의 표지로 전면에 깔린 사랑 꽃길, Love path full of flowers(53cm*45.5cm, Acrylic on canvas, 2014)을 포함한 거의 모든 작품을 꿰뚫고 흐르는 창작 메커니즘이다.

이쯤에서 작가의 말에 귀를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누구나 순수한 유년과 열정의 청년 시절을 보내는 중이거나 그 아름다운 시간을 거쳐 지금 여기에 있다. 어른이 되머가면서 자연과 하나가 되어 아주 작고 사소한 일에도 행복하고 감성이 충만했던 그 시간들이 다른 것들로 채워지곤 한다. 차를 마시고 나면 빈 잔 내려놓듯이, 삶이 끝나고 나면 목숨마저 내려놓아야 하는 게 우리네 인생이 아닌가. ......나 역시 한 동안 예술이라는 관념에 사로잡힌 적이 있었다. 스스로의 탑을 쌓고 올라가 삶과 인간, 존재에 대한 끝없는 질문을 던지며 무거운 짐을 지고 지내느라 밝음과 가벼움을 아예 잃어버렸다. 그러나 요즈음은 그 탑에서 걸어 내려와 세상 속에 넘치는 웃음과 가벼움에 대해 돌아보고, 현실 속에서 조금만 눈길을 주면 선명하게 보이고 귀 기울이면 들려오는 이야기들과 화해하게 되었다.

 - 시간의 강물, 거슬러 항해하며부분

 그는 이 글에서 자신의 그림에서 담아내는 가벼움과 밝은 미소 끝 어디쯤에는 슬그머니 깊고 묵직한 존재에 대한 담론이 따라나서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자신의 작업에 대한 제대로 된 방향을 설정해 놓고서도 현대 미술사의 주류에서 밀려나는 게 아닌가 하는, 비평적 담론에 쉽게 흔들리는 미술 시장의 중심으로 들어가지 못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고뇌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었다. 사랑이 온다가 갖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이영철이 이러한 콤플렉스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데 있다. 이 책은 이영철이 아하, 내가 옳았구나 하면서 미학적 신념을 갖고 자기 세계를 밀어나가고 있는 뜻 깊은 성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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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철은 2014915일부터 21일까지 대백프라자갤러리에서 사랑이 온다출판 기념 원화전을 열었다. 전시장에 머무는 동안 그의 말대로 <순수한 유년과 열정의 청년 시절>로 회귀해온 느낌을 받았다. 모든 작품들이 자연의 숨결과 사람의 체온을 전하고 있었으며, <마음의 창을 활짝 열기만 하면 꿈을 꾸듯, 춤을 추듯 사랑이 온다>는 감동적인 메시지를 전해 주고 있었다.

원화의 감동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지는 못 하지만, 이 책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미덕은 갤러리가 다 보여주지 못 한 다채로운 화보를 통해 그의 작품 세계를 깊숙이 비추고 있다는 데 있다. 넘기는 책장마다 그림이 나온다. 그림책이다. 넘기는 책장마다 시가 나온다. 시집이다. 그리고 그림을 통해, 시를 통해 꽃이 오고, 나무가 오고, 새가 오고, 까치호랑이가 오고, 물고기가 오고, 꽃병이 오고, 술병이 오고, 집이 오고, 달이 오고, 별이 오고, 사람이 온다. 이영철은 캔버스에 담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을 사랑으로 추상한다.

 

홀로 길을 걷다

꽃을 만났다.

하염없이 꽃을 따라가다가

꽃밭에 들어섰다.

끝없이 펼쳐진 꽃밭 속을

다시 홀로 걷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저만치 앞에서 그대가

환하게 웃고 있다.

사랑이 왔다.

 

작품 연인-사랑-꽃길, Lover-Love-Flowerpath(65cm*50cm, Acrylic on canvas, 2014)과 함께 실린 서정적 아포리즘이다. 이것을 시라고 한다면 이 책은 그림을 곁들인 시집이다. 그림을 빼고 글만 따로 책을 만들어도 만만치 않은 시집이 될 가능성이 있다. 어쩌면 힐링의 차원에서는 수준 높은 아포리즘 시집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그린 꽃은 시들지 않는다에서 보여준 아름다운 산문을 에세이라고 말하지 않은 것처럼, 이 책이 보여주는 수준 높은 운문을 시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그냥 그림과 글을 아울러서 힐링 북(healing book)이라고 말하고 있다. 문학으로서의 시는, 특히 신서정과 도시 서정을 중심으로 하는 현대문학으로서의 시는 아포리즘의 경계를 뛰어넘지 않는다. 아포리즘이 추구하는 미학은 그야말로 힐링의 미학이며,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글을 시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내가 그를 캔버스의 시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의 글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그의 그림이 시정시 본래의 건강하고도 섬세한 에스프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는 칸딘스키의 점 선 면과 세잔느의 색채 미학, 원근법을 넘어서는 표현주의적 기법, 동화적 상상력과 신화의 세계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시정신으로 이영철류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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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영철을 캔버스의 시인이라고 했고, 그의 운문은 시가 아니라고 했다. 그의 산문은 훌륭한 에세이지만, 그의 운문은 시의 영역과는 다른 아포리즘의 세계에 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로를 넘어서 힐링을 추구하는 그의 작품 세계에는 아포리즘적 운문이 잘 어울린다.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의미는 그림과 글이 어우러져 감동과 치유를 주는 힐링 북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나는 화가의 작품 세계가 자신의 글과 함께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독자를 향해 다가간 데에서 이보다 더 큰 의미를 찾는다. 이것은 서지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대부분의 화보가 작품전을 계기로 만들어져 일회용으로 사라지는 현실 속에서, 당당한 독서의 대상으로 출판된 것은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그 글이 작업 노트가 아닌 본격적인 산문과 운문이라는 점에서 이영철의 그린 꽃은 시들지 않는다사랑이 온다는 출판계뿐만 아니라 미술계에서도 상당히 큰 의미가 있는 모멘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영철은 다른 화가와는 달리 책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프랑스어 출판을 앞둔 혜민스님의 스테디셀러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2012, 쌤앤파커스)을 비롯해서 적지 않은 시집과 동화책의 삽화를 그렸다. 그리고 자신의 글과 그림으로 펴낸 두 권의 책, 특히 이번의 사랑이 온다는 장욱진 이후 지금까지 어떤 화가도 시도하지 않은 방법으로 콜렉터와 독자를 향해 다가서기 시작했다는 관점에서 출판문화적, 서지학적 관점에서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

내 기억으로는 화가의 그림과 글이 단행본으로 출간된 것은 장욱진의 격조 높은 그림 산문집 강가의 아틀리에(민음사, 1976)가 유일하다. 당시 그 책이 일으킨 반향은 상당했으며, 지금까지 리메이크되어 살아 움직이고 있는데도 그런 책이 잘 나오지 못 한 것은 작업 노트의 수준을 넘어서는 글을 쓸 수 있는 화가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며, 설사 있다 하더라도 화가 자신이 대담하게 이런 작업을 기획하기 어려운 출판 현실 때문일 것이다.

나는 장욱진 이후 한 세대를 훌쩍 건너뛰어 이영철이 더 적극적이고 본질적인 자세로 그 맥을 잇고 있다는 데 큰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고 보니 달과 별은 물론 꽃과 나무와 새와 사람이라는 소재의 측면과 그 소재들의 유니크한 표현, 그리고 그 소재들을 수직으로 배치하는 구도의 측면에서 그의 작품이 장욱진의 세계와 에꼴화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쓸데없는 사족이지만 그림이 되고 글이 되는 중견 작가 이영철이 지금 대구에 닻을 내리고 작업을 하고 있다는 데서도 나로서는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미학이데올로기와 지역 콤플렉스를 훌쩍 넘어서서, 자신의 세계를 더 뚝심 있게 밀고나가 소박하고 따뜻한 힐링의 대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