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화가 이영철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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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윤배(시인) 사진: 윤영 (수필가)

 

올겨울 들어 가장 춥다는 오늘이 거짓말은 아니었다. 시계는 이미 오후 2시를 넘었다. 남문시장 3지구 상가에 있다는 화가 이영철의 화실을 찾아 오르는 동안에도 꽁꽁 언 몸이 풀리지 않는다. 어서 가서 활활 타는 난로에 몸을 녹이고 화가의 전 생애를 들여다봐야지 라던 생각은 빗나갔다. 으레 화실에 있을 법한 난로는 없고 두툼한 야전 잠바 몇 벌만이 걸려있을 뿐. 바람 소리가 창문을 때리고 간간이 눈발이 날려와 부딪힌다. 슬며시 기울어가는 햇살이 창으로 들이치고 차 한 잔을 마주한다. 추위는 어느새 아랑곳없다. 그는 따뜻했다. 표정도 따뜻했고 그림도 따뜻했다.

그런 그에게 화가의 겨울에 대해서 막연한 질문을 던졌다.

화가에게 있어 겨울은 일 년의 농사계획을 세우는 계절이란다. 강의도 방학에 들고, 전시회도 없고 캔버스를 당기고 밑그림을 바르며 어떻게 한 해의 그림 농사를 지을지를 고민하고 구상한단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그림을 일러 봄을 주로 많이 그리는 편이라고 넌지시 알려 주었다. 그래서일까. 화실 곳곳엔 유독 봄을 소재로 한 그림이 많다. 노오란 개나리꽃밭으로 채워질 그림 한 점에 눈길이 머문다.

화가의 겨울은 춥지 않음이 분명하다. 겨울을 품지 않은 봄이 어디 있겠냐는 말로 겨울에 대한 생각을 요연하게 들려주었다. 자신의 아호가 또한 봄산 즉 <봄을 품은 산>이라고 긍정과 희망의 덩어리를 그림으로 풀어내는 것이 최근의 그가 추구하는 세계라면 세계일 것이라고 한다.

자신을 어떤 화가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과거의 그림이 현재의 봄산을 품기까지의 사연을 들려주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초창기에는 존재, 어둠, 죽음, 윤회, 고난 등 실존의 문제와 버무려 회화적인 표현영역을 넓히려 했다고 한다. 무작정 산만 그리는 게 아니라 산이 품은 보이지 않는 굴곡도 썩은 나무도 허물어져 가는 봉우리도 담아내야 한다고, 밝고 가벼운 그림은 그림이 아니라고 배웠던 그에게 창문을 열고 강풍에서 훈풍을 맞이하기란 그리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영향은 대학에서 그림을 가르치는 과정에서의 현대 미술의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며, 자신에게 당면한 집안의 문제 등 개인사적으로 세상의 바닥을 드러내어야 한다는 일념에 사로잡힌 시기라고 그는 털어놓았다. 그러나 지금 이영철 화가의 그림세계는 눈이 시리도록 환하며 따듯하다. 희망으로 가득 차있다. 그렇게 변신을 하게 된 사연이 궁금해졌다. 어떤 계기가 있었던가요? 라는 질문에 그의 답은 말보다 먼저 붉어진 눈시울로 화답이 온다.

어머니가 쓰러졌다. 그리고 화실에 박혀 그림을 그리던 화가 이영철은 병간호로 일과를 보내게 된다. 오랫동안 의식을 찾지 못한 어머니가 누워있고 어머니의 머리맡엔 창문이 없었다. 창문도 없이 흰 벽뿐인 그 벽을, 행여 깨어난 어머니가 바라본다면 심정이 어떨까를 그는 생각했다. 약간의 샤먼에 기대기도 했던 어머니이고 보면 어머니가 좋아할 무언가를 저 벽에 그려서 걸어두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물감통 이라는 입체면 위에 그린 것이 부처다. 신기하게도 어머니는 조금씩 의식을 회복하셨다. 기쁨과 설렘에 삽화 수준의 온갖 꽃들과 나비와 새를 그려 채워갔다. 그 흰 벽에 그림들을 걸고 떼기를 43일이나 했단다. 그동안 240여 점의 그림들은 어머니에게 미소와 온기를 만들어주더니 움직이지도 못하셨던 어머니가 걷는 것을 보던 날이 아직 잊혀지지 않는다고 하신다. 어머니뿐만 아니라 5인 병실의 환자들 마음마저 어루만진 것이다. 심지어 간호사며 의사도 따듯한 마음으로 환자들을 대하게 되었을 테고 갑자기 병실은 희망의 병실로 바뀌어 갔다. 화실이 아니면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고정관념으로부터도 벗어났다. 나중엔 화실에서 병간호하는지 병실에서 그림을 그렸는지 모를 만큼 그는 그림에 심취했다. 화실에서보다 더 많은 그림을 그렸단다. 힘들수록 밝은 그림을 그리고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게 되었단다. 관념적인 사고를 버리고 형상화된 이미지로 그려내게 된 것이다. 결국 어머니가 그의 그림 세계를 바꾼 것이다.

그에게 있어 스승은 바로 그의 어머니였다. 어릴 때부터 연상력이 좋은 편이었던 화가 이영철은 어머니로부터 정직함을 늘 강요받아왔다. 그런 그가 그림도 잘 그렸지만 글을 매우 잘 썼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곳곳의 백일장에서 장원은 도맡아 했다고 한다. 그때마다 그는 어머니에게 글을 쓰다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고백했다. 뜻밖에도 어머니는 남들에게 기분이 좋게 하는 거짓말은 해도 된다고 일러 주었던 것이다.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인 어머니가 하얀거짓말을 하실 줄 아셨던 것이다.

어머니 이야기가 나오자 그의 눈이 다시 젖어온다. 화가에게 있어 스승이었던 어머니는 2여 년 전 돌아가셨다. 눈이 부시도록 환한 봄날이었고 하필이면 화장을 하고 돌아오던 날은 어버이날이었단다.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그가 어머니를 잃고 얼마나 울었을지는 연상이 되고도 남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잘못한 일들만 따라다니며 자신을 괴롭히더란다. 하여 49재를 하는 동안 슬픔과 속죄의 마음을 들꽃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수십 송이만 그리려고 마음먹었던 꽃송이는 어느새 수천 송이가 되고 붓을 놓고 보니 수만 송이의 꽃밭이 그려졌다고 한다. 송이송이 피어나던 개망초와 개나리와 찔레꽃을 보면서 그는 무아지경을 경험했노라고 고백한다. 결국은 어머니가 기도하던 그대로 남에게 즐거움을 주는 그림을 그리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밤낮으로 그림을 그리던 그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혜민 스님의 책에 그림을 그리면서 어렵던 화가로서의 생활도 조금은 나아졌다고 했다. 어둡고 칙칙한 그림이 생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화단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의 그림이 장식성에 치우친 것은 아니다. 생활과 밀접해진 것이다. 소재를 삶의 근저에서 찾아내고 그 소재는 본질을 넘어 새로운 의미로 승화시켰다. 그의 작업은 희망의 상징이다. 그림을 통해 어두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그의 근저에는 깔렸다.

자신의 그림이 가지는 저작권을 종교단체나 공공기관에서 사용하는 데에도 흔쾌히 동의한다. 버려진 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고 모래를 깔아주고 그림 한 점이라도 판매한 날에는 닭 한 마리도 대접할 줄 안다. 끌어안고 보듬을 줄 아는 그의 심성이 곧 그림으로 승화되는 것이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먹이 사슬의 낮은 곳에 있는 모든 것들은 그에게 슬픔이 되고 안쓰러움이 되는 것을 보면 그는 따뜻한 화가다. 세상에 반드시 필요한 화가다. 그렇게 늘어나는 고양이들 때문에 상가 주민들의 대책 논의가 있었고 집단 항의가 있어도 몰래 배고픈 고양이에게 여전히 먹이를 주고 집 없는 고양이들을 위해 창문을 살짝 열어 놓는단다.

문득 맹자의 사단이 왜 생각났을까.

측은지심은 인의 단서로서 사랑하는 마음이다. 수오지심은 의의 단서로서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이고, 사양지심은 예의 단서로서 사양할 줄 아는 마음이고, 시비지심은 지의 단서로서 옳고 그른 것을 구분할 줄 아는 마음이다.

그를 보면서 생불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같이 취재하며 사진을 촬영하던 수필가 윤영은 그를 만나고 나오더니 많이 설렌다고 하더니 카카오스토리에 존경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글을 올렸다.

취재는 달아나고 선생님의 삶이 나를 녹여버린다 /말이 아닌 눈빛과 마음이 전해진다 /다음엔 꼭 환풍구가 돌아가는 선술집에서 도루묵 안주 삼아 나누지 못한 이야기로 날밤을 지새우고 싶다/멈추니 보이는 것들을 알게 되었다/ 사랑이 끝없이 온다는 것도 배웠다 /오방색으로 태어나고 싶다/ 아직 미지수로 남아있는 푸른빛 바탕에 채울 개나리의 미래를 기다리겠다.

오방색을 주조색으로 다루고 있는 화가. 그림과 사람의 거래 사이에서 어떤 절망을 느껴도 빠르게 포기할 줄 아는 것이 현명하더라는 화가. 그에게 느닷없이 취미가 있느냐고 물었다. 사진을 좋아한다고 한다. 혹시 이유가 있느냐고 물었다. 사냥이나 낚시, 심지어는 꽃꽂이도 대상을 헤치지만 사진은 헤치지 않고 담을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어찌 그를 생불이라고 하지 않을까.

화실 가득 채우고 있는 책과 창가의 음향시설에 자꾸 눈이 간다. 아니나 다를까 음악과 책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고 했다. 그의 책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니, 책은 스승이라 했다. 요즘 그는 책의 힘을 알았다고 한다. 얼마 전 <사랑이 온다>를 출간하고 나니 특강 다닐 기회가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그림에도 많은 독자가 생긴 것 같다고 했다. 어찌나 바쁜지 그리 즐기던 술 마실 시간이 없을 만큼이라니 생활이 짐작되고도 남는다. 덕분에 오히려 건강은 좋아졌다고 하니 일거양득을 얻은 셈이지 않은가. 치유가 되는 이야기를 더 많이 쓰고 싶다는 화가의 곁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다. 어딜 가든지 좋은 감정으로 기다려주는 것에서 많은 위안을 얻는다고 말한다. 외려 그림 밖의 사람들과 많이 만난다고 한다. 시인들을 만나 속이야기를 나누고 영화평론가를 만나 흑백필름처럼 천천히 가는 법을 배운다고 했다.

어머니를 통해 변신하게 된 그의 그림 세계가 결국에는 어머니가 가지고 있던 불교성향의 영향으로 자신을 깨달아가는 과정에서 생명의 색 오방색을 얻었으니, 밖의 고양이들도 더는 춥지 않으리라. 그의 그림을 만나는 낮은 곳의 사람들은 따듯해질 것이고 이미 가진 자들은 자신을 덜어내어 베풀고 사는 그런 세상을 화가는 꿈꾼다. 엄마의 기도대로 살아가지게 되더라는 이영철 화가는 키가 큰 나무와 키가 작은 나무 사이를 오갈 줄 알며 그린 꽃에도 생명을 불어넣을 줄 아는 화가다.

계단을 오를 때 꽁꽁 얼었던 몸이 어느새 슬그머니 풀어지고 온몸을 화롯불로 데운 듯 따뜻하다. 인터뷰를 마치고 긴 복도를 걸어 나오는 동안에도 215호실의 문은 닫히지 않는다. 세상 곳곳을 어루만질 그의 손이 오래도록 흔들린다.

참 따스운 화가다. 동행했던 윤영 편집위원의 얼굴에도 봄꽃이 마구 피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