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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No Country for Old Men

퓰리쳐 상 수상작가인 코맥 맥카시가 미국과 텍사스 국경을 배경으로 쓴 ‘국경 3부작’중 가장 최근작인 2005년산 동명 소설을 소재로  20세기 후반기 대표적인 포스트모더니즘 감독으로 평가받고 있는 조엘 코엔-에단 코엔 형제가 메가폰을 잡은 스릴러 드라마다

코엔 형제의 최고 작품 <파고>를 연상시키는 이 영화는, <그라인드하우스>( <플래닛 테러>편)>, <아메리칸 갱스터>의 조쉬 브롤린이 우연히 돈 가방을 습득하여 사건에 휘말린 주인공 를르윈 모스 역을 맡았고, <도망자>, <맨 인 블랙>의 토미 리 존스가 노년의 보안관 에드 톰 벨로 등장하고,  <씨 인사이드>, <콜레라 시대의 사랑>의 하비에르 바르뎀이 섬뜩한 사이코패스 살인마 안톤 시거 역을 연기한다.  그 외에 주요 배역으로는 <래리 플린트>, <스캐너 다클리>의 우디 하렐슨,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내니 맥피>의 켈리 맥도날드, <아버지의 깃발>, <팩토리 걸>의 베쓰 그랜트 등이 열연하고 있다.


주인공 모스는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퇴역군인으로서 아내 진과 함께 편안한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카우보이이다. 그러나 어느 날 텍사스 주 서부의 사막 한 가운데서 사냥을 즐기던 그는 총격전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있는 충격적인 현장을 발견한다. 모스는 자동차 뒷자리에서 다량의 헤로인과 200만 달러의 거액이 든 돈 가방을 발견하고 그 돈에 욕심을 내면서 급속도로 사건의 중심으로 휩쓸려 들어간다.

돈을 숨기고 새벽녘에 다시 현장을 방문한 모스는 때마침 마주친 추격자들에게 노출이 된다. 이때부터 그는 경찰과 냉혹한 연쇄 살인마 안톤 시거의 타깃이 되고, 여기에 노 보안관 벨이 개입되면서 이 영화의 상황은 표면적으로는 돈과 살인, 도망자와 추적자, 피와 총소리가 난무하는 전형적인 스릴러물로 진행이 되고, 본질적으로는 시간의 절대적인 통제를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의 소멸과 허무, 실존의 문제, 그리고 그 숙명을 극복해 나가는 지혜 즉 시간의 폭력 앞에 한 개체는 어김없이 소멸되어가지만, 세대와 세대를 이어가는 지혜를 통해 <나>는 소멸되더라도 <인간>은 질긴 생명력을 이어가기 때문에 바로 그 허무를 딛고 일어선 지점에 벨의 아버지가 피우려 애쓰시는 등불처럼 확고한 인간 삶의 희망을 이야기 하고 있다.

결국 이 영화는 폭력이란 겉 포장지를 덧씌워 숙명 앞에 패배한 인간군상들 즉 무기력해진 보안관 벨의 경우에서 보듯 적극적인 사건 해결 보다는 방관자로 전락한 채 세상을 바꾸지 못하고 있는 힘없는 노인의 자괴감 혹은 무기력함을 통해 <노인의 나라는 없다> 고 말하지만, 영화 종반부 벨이 꾼 아버지의 꿈처럼 생성된 모든 것들은 시간 앞에서 모두 소멸한다는 그 거부할 수도 벗어날 수도 없는 숙명을 극복하는 지혜를 가진 사람들 즉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나와 후세대로 이어지는 하나의 거대한 존재 과정의 일부분 속에 나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에게는 <노인의 나라는 있다>는 것을 선명하게 말해준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이영철 작업 파일 및 제작의도


1. 파일 A / 080309-1

56 X 75.5cm, 파브리아노 종이 위에 아크릴릭, 꼴라주 혼합기법.

2. 파일 B / 080309-2

56 X 75.5cm, 파브리아노 종이 위에 아크릴릭, 꼴라주 혼합기법.


3. 나의 작업 이미지에 담은 내용

1) 파일 A 상하좌우 C, M, B, W 이니셜- 주요 등장인물의 이니셜.

* 중앙 상단의 사방 화살표의 구속 아래 추락하는 이미지는 이 인물들을 포함한 존재의

  허무를 표현함

2) 두 파일작업에 나타난 숫자들

* 25-벨이 보안관이 된 나이

    - 냉혹한 킬러 시거가 가게 주인의 목숨을 놓고 현전하는 사물의 실존에 관한

         담론을 펼치게 되는 25센트 동전

* 1909 / 1958 / 1980 / 2008 등 연도표기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숫자이며 시간 앞에서는 극중 인물, 관객인 우리와 사물들 등 모든 존재가 하나의 과정일 뿐이라는 암시

- 사실 내가 보기에는 인간과 사물 등 이 세상의 모든 있음(존재)을 소멸시키는 가장 잔혹    한 킬러의 실체는 <시간>인 듯 했다.

안톤 시거는 바로 시간의 집행자 즉 시계 같은 존재로 보여 지는데, 등장인물들은 이 철저하게 계획된 원칙에 의해 움직이는 킬러의 타깃이 되는 그 순간부터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국은 빈틈없는 죽음의 과정을 걷게 되는데... 우리들 인간 또한 모두가 태어난 그 순간부터 시간이란 킬러의 절대적인 구속력 속에 활동을 하다 궁극적으로는 피할 수 없는 죽음에 이르게 되는 점에서 내가 이 영화를 보고 느낀 전율은 피나 냉혹하고 징그러운 시거의 외형적 모습이 아니라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시간에 대한 자각이었다,

물론 이 시거 역시 절대적인 존재 자체가 아니라 그 역시 시간을 집행하는 하나의 도구 즉 오브제이며 그 또한 느닷없이 들이닥치는 시간의 폭력 앞에 소멸의 과정을 걸어가기는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라는 것을 영화 후반부 자신은 신호등이 파란불인 것을 보고 규칙대로 정상주행을 하지만 그 규칙을 지키지 않고 무자비하게 치고 들어와 대형 사고를 내고 마는 제3의 익명의 존재를 통해 암시해준다.

한때는 세상의 중심에 있는 줄 알았지만 이제는 무기력한 방관자가 되어버린 노 보안관 벨의 독백(이따금 유령 같은 놈이란 생각이 들어...너무 힘든 상대를 만난 것 같아...)에서 나는 벨이 결코 시거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님을 이해할 수 있었다.

1909(맥 삼촌의 죽음), 1958(25센트 동전 제조년도), 1980(22년간 여행한 동전을 놓고 앞면 아니면 뒷면 즉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영화 속 현재), 2008(그 상황을 영화로 보는 지금 여기... 그래서 영화 속 시거에 대한 공포가 아무상관도 없이 영화를 보는 지금 우리들에게 더욱 전율스러운 것은 그 공포의 실체는 킬러 시거가 아니라 시간이고, 우리도 이미 그 킬러의 타깃이 되어 그가 실행하고 있는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시점에 관한 게임에 어쩔 수 없이 동참하게 된 불안하고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존재라는 것, 즉  그의 말처럼 <넌 이게임에 평생을 걸은 거야, 다만 네가 몰랐을 뿐이지...> 라는 현실을 인정해야만 한다는 것을 모두가 본능적으로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특히 시거의 동전을 놓고 벌이는 존재의 실존에 관한 담론은 이 영화의 압권이었다. 1980년 어느 날 한 가게 안에서 동전 하나, 가게 주인, 킬러 시거는 우연히 같은 시간을 공유하게 된 존재다. 그들은 각자 다른 곳에서 생성되었고, 다른 경로를 거쳐 마침내 여기에 있다. 그리고 동전은 앞면이냐 뒷면이냐를, 가게 주인은 죽게 되느냐 살게 되느냐를. 킬러는 죽이느냐 마느냐 하는 이분법적인 상황에 처해진다. 이처럼 존재 자체의 판단과 가치는 의외로 단순하다. 그래서 더 허무하고 잔인하다. 우리도 살아가며 수많은 고민과 판단을 하고 꿈을 꾸고 미움과 용서 희망을 기대하지만 그 모든 것을 걷어내고 난 지점에는 존재냐 부재냐의 문제만 남는다. 이 영화에서도 우리는 그들이 처한 상황의 현상을 보고 긴장하지만 진실은 존재에 대한 질문에 있다. 게임이 끝나고 위기를 넘긴 가게 주인에게 시거는 그것을 말해준다. 너의 목숨을 구해준 그 행운의 동전을 아무렇게나 주머니에는 넣지 말라고, 그렇게 되면 이 엄청난 의미를 지니게 된 동전이 다른 것이랑 섞일 것이고 그러면 의미를 잃게 된다고 말해준다. 그 동전이 원래 그러했던 존재이듯이...!

* 카우보이모자를 쓴 실루엣의 남자-관찰자 시점에 서 있는 보안관 벨

인간도 그저 하나의 과정 속에 있는 존재임을 암시하고자 함

현전한다고 모두 현존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아는 데는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리고 그 시점에서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것이 허무일 것이다.

리는 바쁜 일과 중요한 일을 구별하기 쉽지 않을 만큼 실존보다는 허상의 이미지에 취해 대부분의 인생을 낭비하는 불행한 시대를 횡단하고 있다. 보이는 것이 아무리 위협적이고 냉혹해보여도 그 공포와 허무의 정체는 가려진 이면의 실존에 질긴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이 영화도 폭력이란 좀 더 자극적인 장치를 통해, 그리고 상징적인 등장인물들을 내세워 많은 부분을 전달하고 있는 듯하다.

벨은 영화 도입부의 독백을 통해 할아버지, 아버지, 본인으로 이어지는 존재의 연속성, 혹은 과정을 언급하고는 영화 중반부에 인간적인 무력함, 허무, 방관자로서의 비애 등을 보여주다가(세월은 막을 수 없는 거야...너를 기다려주지도 않을 거고...그게 바로 허무야.)

영화 결말에 이르러 마침내 어두운 저편에서 불을 피워보려 애쓰시는 아버지에 관한 꿈 이야기를 통해 한 존재의 소멸이란 다음 존재의 삶으로 이어지는 과정에 다름 아니며, 그래서 아무리 냉혹한 시간이란 킬러가 나를 처참하게 소멸의 길로 이끌어 간다 해도 우리는 그 시간의 거친 흐름을 타고 오르내리며 세대와 세대를 이어가는 지혜를 가지고 있는 한 할아버지가 그러했고 아버지가 그러했듯이 인생이란 그저 노인이 되어버리면 육신도 영혼도 쉴 곳이 마땅치 않은 허망한 존재가 아니라 희망을 안고 살만한 곳에 닿아있음을 말해주고 있다고 느꼈다.

* 다양한 컬러로 된 원형들

- 에어건 및 총알구멍, 동전, 신호등, 죽음이란 동일한 상황에 이르는, 그러나 어느 하나도 똑같은 것이 없는 다양한 인간, 인생들을 상징

* 2개의 작업파일에 담은 이분법적인 상황들의 표현

- 동전의 양면 (25센트의 게임, 삶과 죽음의 이중성). 두 유형의 킬러 (눈이 크고 별로 매력적이지도 않으며 잔잔한...그러나 실체를 알고 보면 충격적으로 잔혹한 실존적 캐릭터와 멋있고 뭔가 해낼 듯 큰 기대감을 가지게 하는.. 그러나 허망하게 소멸되는 캐릭터의 이중성) 등 영화에 등장하는 양면적인 요소들을 변화, 불안, 불안정성, 피 등 유동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삶의 상황을 동적인 붓질과 색채 및 파일 A의 좌우 혹은 파일 B의 우측에 규칙적으로 정렬된 시간의 원칙, 규칙, 절대성을 대비시켜 상징적으로 표현 함

이 영 철(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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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詩·그림을 만나다] ⑧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사랑도 삶도 모두가 허구…피할 수 없는 죽음

No Country For Old Men

감독:에단 코엔, 조엘 코엔

출연:토미 리 존스, 하비에르 바르뎀

등급/상영시간:18세 관람가/122분

줄거리:사막 한가운데서 사냥을 즐기던 모스(조쉬 브롤린)가 총격전이 벌어진 듯 출혈이 낭자한 사건 현장을 발견한다. 모스는 물 한 모금을 갈구하는 단 한명의 생존자를 외면한 채 떠나다가 우연히 200만달러가 들어있는 가방을 발견한다. 횡재를 했지만 물을 달라는 요구를 거절한 게 내심 꺼림칙했던 모스는 새벽녘에 현장을 다시 방문하게 되고, 때마침 마주친 경찰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만다. 여기에 200만달러가 든 가방을 찾는 살인마 안톤 시거(하비에르 바르뎀·사진)와 보안관 벨(토미 리 존스)이 끼어들면서 이야기는 혼돈과 폭력의 결말로 치달아 간다.


노태맹 시 / 이영철 그림 / 2008년 5월 3일(토) 매일신문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노인이 읊조린다.

“이 세상에 우리가 꿈꾸던 나라는 없었다.” 그는 보안관이다.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황량하고 거친 서부에서 정의를 세우려고 한 보안관이다. 만년의 그는 이제 무기력하다. 범죄 없는 행복한 나라, 모두에게 공평하게 정의가 적용되는 나라, 악이 사라진 나라에 대한 꿈도 힘을 잃었다. 그 어떤 것도 세상을 바꾸지 못할 것이라는 자괴감만 노인의 녹슨 총자루에 내려앉았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퓰리처상 수상작가인 코맥 맥카시가 미국과 텍사스 국경을 배경으로 쓴 ‘국경 3부작’ 중 가장 최근작을 코엔 형제가 영화화한 작품이다.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등 주요 상을 휩쓸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폭력물이다. 그러나 품새는 상당히 철학적이고, 관조적이고, 운명론적이다.

보안관 벨은 노련하고 현명하지만 행동성은 약하고, 카우보이 모스는 소시민적인 욕망의 덩어리고, 해결사 칼슨은 자본주의의 화신이다. 모스의 아내 칼라는 남편을 믿고 따르다 결국 살해되는 그릇된 선택의 희생자다. 모두 현대 미국 구성원의 대표자들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안톤 시거라는 희대의 살인마다. 그는 전혀 살인을 저지를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인물이다. 굵은 눈은 처량하고, 칼 세운 진바지는 반듯하고, 단발형의 머리는 마음씨 좋은 이웃 아저씨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그는 만나는 모든 사람을 살해한다. 심지어 자신을 도와준 사람도 파리 목숨처럼 가벼이 죽여 버린다. 그가 보는 인간은 25센트짜리 동전과 다르지 않다. 생겨나고, 떠돌아다니다 결국 사라지고 마는, 어떤 존엄성도 없는 존재다. 죽음 앞에 선 모스의 아내가 묻는다. “이럴 필요가 없잖아요?” 그렇다고 이러지 말아야 할 필요는 뭐가 있나?

그는 동전의 양면 같은 필연, 우연 사이에서 스스로 운명을 결정짓는 운명의 화신이다.

그가 가진 살인 무기는 상당히 은유적이다. 그는 무거운 에어건을 들고 다니며 사람을 죽인다. 총은 칼에 비해 죽음의 죄책감에서 조금 더 벗어날 수가 있다. 그러나 그는 총알조차 없는 공기로 사람을 죽인다. 이마에 총탄 자국이 선연한데 총알은 없다. 공기는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물질이지만, 응축될 때 그 어떤 총탄보다 강력한 화력을 뿜어낸다. 그는 흔적 없이 슬그머니 다가오는 죽음의 화신이다.


화가 이영철은 피가 낭자하게 뿌려진 캔버스에 관찰자인 보안관을 그렸다. 그리고 각 모서리에는 주인공들의 이니셜을 달았고, 사방 화살표의 구속 아래 추락하는 인물은 존재의 허무를 나타낸다.

가장자리의 원형은 총알구멍, 동전, 신호등, 죽음을 시각화한 것이다. 죽음이란 동일한 상황에 이르지만 어느 하나도 똑같은 것 없는 다양성을 보여준다.

한편 이 원형은 시계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시간은 피할 수 없는 죽음의 단두대다. 존재를 소멸시키는 안톤 시거의 잔혹한 실체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결국 빈틈없는 죽음의 과정을 걷게 되는 시간의 모습과 닮았다.


시인 노태맹은 "늙음은 지혜의 도가 되지 못한다"며 아예 "우리들의 나라는 없다"고 단언한다. 그는 삶조차 허구라고 단정 짓고 우리들의 나라는 허구의 바다, 허구의 황금궁전으로 정작 우리가 없는 곳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지고 뜨고 지는 해와 저 달이 뿜어내는 열역학 속에 작동되는 죽음 기계, 그 운명은 시계가 똑딱거리며 가듯이 생명도 그렇게 가고 만다는 필연성과 덧없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