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코메티의 추억

  박봉의 공무원 살림으로 31녀를 이끌고 힘겹게 70년대를 건너시던 아버지는 둘째아들이 화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눈치 채시고 반대가 심하셨다. 하지만 어머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고도 식지 않는 아들의 열망이 일시적인 계절풍이 아님을 이해해주셨다. 그러나 김천시내 고등학교에서 소백산맥 줄기 황악산 골짜기 아래 우리 마을까지는 50리가 넘는 거리였고, 해만 지면 막차가 끊기는 터라 방과 후 미술실에 남아 그림공부를 한다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낡고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고물자전거 한 대를 구해 오시는 것으로 드디어 나의 그림 그리기를 은밀하고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나는 기존 조각이 추구하던 양감을 모두 제거하고 뼈대만 남은 인간의 실존적인 모습을 표현한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를 흠모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 이미지를 빼닮은 자전거는 자연스럽게 자코메티란 이름으로 내 삶의 한가운데로 들어왔다.

  이제 아무리 늦은 시간 먼 거리라 해도 귀가하는 문제가 해결되자 미술실에 틀어박혀 있는 시간이 너무나 즐거웠다. 방과 후에도 늦도록 그림 연습을 하다가 남들이 대부분 잠든 시각, 가로등도 없는 어둡고 외진 시골 길을 오노라면 근시가 심했던 탓에 어려움도 많았다. 보름달이 뜬 날이면 자코메티를 타고 다녔지만 그렇지 못한 많은 날들은 먹물에 빠진 듯한 어둠 속으로 겨우 희미하게 보이던 중앙선의 따라 녀석과 함께 하염없이 걸었다.

  그렇게 끝이 보이지 않던 길을 걷고 달리다 멀리 마을 불빛이 보이는 산모퉁이를 돌아서기만 하면 어둠 저편에서 안쓰러운 목소리를 앞세운 어머니가 단 하루도 빠짐없이 마중을 나오셨다. 원래 어둠에 대한 두려움이 유난스러웠고 사소한 일에도 예민하고 나약한 성격이었지만, 그림에 대한 희망과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있을 어머니에 대한 환한 믿음이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긍정하게 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사정이 힘들었지만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그림을 그린다는 뿌듯함과, 양손에 굳게 쥔 자코메티의 핸들을 놓지 않는 한 언젠가 화가가 될 것이라는 확신 속에,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우리의 동행은 계속되었다. 자코메티의 뒷좌석에는 책가방 외에 야외스케치 때면 태웠던 숱한 친구들의 엉덩이와 그림도구들, 철따라 정물화 소재로 쓸 들꽃다발과 과일꾸러미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글어가는 화가의 꿈이 언제나 풍성하게 실려 있었다.

  세월과 더불어 빛나던 기억들이 어느새 추억 속으로 밀려갔다. 해가 바뀌고 거듭 바뀌어 다시 새해 새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모두가 희망을 이야기하고 소망과 사랑을 기원하고 다짐하는 시간이다. 나 또한 가슴속에 여전히 선명하게 살아있는 전혀 녹슬지 않은 자코메티와 함께, 올해도 성장기 화가의 꿈을 고스란히 싣고 활기찬 여행을 계속할 생각에 연초부터 마음이 설레고 있다.

 

 이영철(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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