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여행


소백산맥 아래 추풍령 골짜기에서 자란 나는 중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기차 편으로 시내까지 통학을 했다.  당시 선친이 철도공무원이셨던 까닭에 가족들에게는 철도 패스라는 증명서가 있어서 한 달에 약 보름 정도는 특급열차 까지 무료 승차가 가능했는데, 70년대에 청소년기를 맞이한 시골소년의 본격적인 기차여행은 그런 혜택과 타고난 호기심이 겹쳐져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방과 후 일주일에 한두 번씩 나는 무작정 역으로 달려가 시간표부터 체크했다. 그리고 개찰이 진행 중인 상 하행선 열차를 탔다가 어느 역에서 되돌아오면  집으로 가는 마지막 완행열차와 갈아타기가 적당한지 가늠해 본 후 주저 없이 아무 열차에나 올랐다.

수업이 일찍 마치는 날에는 당연히 여행의 거리도 길어졌고, 탔던 기차가 연착해 집으로 가는 막차를 놓치는 날이면 출발역으로 돌아온 후 시외버스를 타고 30여리를 가다 중도에서 하차해 외진 산길을 20 리 정도 더 걸어서 귀가를 했다.

그래도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 차창 밖으로 스치던 풍경들의 숨 가쁜 속도감과, 객차 맨 끝 칸 너머 현기증 나게 밀려가던 생생한 원근감, 그리고 레일과 구르는 바퀴가 일정하게 주고받는 덜컹거림의 유혹은 부모님의 꾸지람이나 어두운 산길을 혼자 걷게 되는 불안함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여행의 습관은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자전거 통학으로 잠시 주춤했지만 방학을 이용해 경북선과 경전선, 전라선으로 반경을 넓혀나가다 대학시절에는 중앙선, 동해남부선, 태백선, 장항선으로, 그리고 사회에 진출한 후에는 멀리 유레일로 확장되었다. 기차와 함께한 일몰과 일출, 눈보라와 비바람, 태양과 구름, 안개 등에 섞인 풍경이 잘 익은 옥수수 알갱이처럼 추억으로 박혀 있고 그 속에서 만난 잊지 못할 인연들도 수없이 많다.

괜히 시비를 걸어와 나를 괴롭히다가 미술학도라는 말에 갑자기 누그러져 호형호제 하게 된 선배, 간암 말기의 판정을 받고도 돌아갈 집도 없어 눈물 흘리던 아저씨, 시든 나물 한보따리 껴안고 새벽 장터로 가시던 할머니,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목할 만 한 전시회가 있을 때 마다 어김없이 밤기차를 타고 서울역과 청량리역으로 실어 나르던 화가의 꿈 까지 나의 아련한 아날로그 추억 속에는 여전히 따사로운 햇살처럼 기차가 달리고 있다.



이영철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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