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詩·그림을 만나다


일 포스티노(Il Postino, 1994)

감독:마이클 레드포드

출연:필립 느와레, 마시모 트로이지

러닝타임:116분



매일신문 2008년 12월 20일(토)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사랑에 빠진 마리오가 네루다에게 얘기한다.

"전 사랑에 빠졌어요." 네루다는 "심각한 병이 아니야. 치료약이 있으니까"라고 대꾸한다. 그러나 마리오는 "치료약은 없어요. 치료되고 싶지 않아요. 계속 아프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계속 아프고 싶다? 기가 막힌 사랑의 본질이다.

사랑은 늘 아프다. 가슴을 짓누르고, 갈라 놓고, 뻥 뚫어 놓는다. 아프면서도 계속 하고픈 것이 사랑이다. 계속 그렇게 아프고 싶다. 사랑에 대한 최고의 메타포(은유)가 아닐 수 없다.

'일 포스티노'는 시와 은유를 찬미한 영화다. 이탈리아 작은 섬의 집배원이 망명 온 유명한 시인에게 편지를 전해주면서 순수한 자아와 시심(詩心)을 발견하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197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1904~1973)가 1952년 칠레에서 추방돼 이탈리아 나폴리 인근 작은 섬에 기거할 때의 실화를 근거로 만든 작품이다. 마리오 역을 맡은 이탈리아 배우 마시모 트로이지는 안토니오 스까르메따의 원작 '불타는 인내심'의 17세 소년 집배원을 30대로 바꾸고 자신이 직접 주연과 각본을 맡았다.

마시모는 영화 촬영을 끝내고 이틀 후 사망했다. 영화 촬영 전 이미 두 번의 심장수술을 받았고, 영화를 찍으면서도 위험하다는 경고를 받았지만, 그는 촬영을 멈추지 않았다. 이미 그는 운명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일 포스티노’는 그의 유작이자, 그의 영혼이 녹아든 영화이다.

그는 어눌하면서도 순진한 시골 집배원 역할을 완벽하게 연기하면서 '일 포스티노'의 진정성을 한껏 높였다.

시는 다른 세계를 여는 창이다. 창 너머를 비춰주는 아름다운 프리즘이 바로 은유이다. 이 영화는 섬과 바다, 바람과 별을 시와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은유로 풀어낸다. 글자를 겨우 읽던 마리오는 은유를 알면서 그동안 보이지 않던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

어부들의 그물은 '아버지의 서글픈 그물'이 되고, 밀물과 썰물도 '배가 단어들에 의해 튕겨지는 느낌'이라고 표현할 수 있게 된다. 나무를 스치는 바람, 파도가 부딪치는 소리, 신부님의 종소리 등 그동안 예사로 보던 사물들이 모두 시적영감의 대상이 된다.

마리오는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시를 써달라고 네루다를 조른다. 네루다가 거절하자 “시는 시가 필요한 사람의 것”이라는 놀라운 말을 한다. 시가 세상에 나왔을 때는 이미 시인의 것이 아니다. 그 시가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의 것이다.


시인 박진형은 '은유라니요'라는 시에서 마리오의 시심을 한번 더 은유한다. 마리오는 바다가 되어 일곱 개의 초록 혓바닥으로 베아트리체를 만지고 가슴을 토닥거렸다고 확장하고, 은유가 처녀의 젖가슴에 농밀한 판타지의 흔적을 남겼다고 찬미한다. 친절한 바닷새, 네루다에게 '시가 나를 찾아왔어요'라고 말하는 마리오의 모습이 절실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화가 이영철은 네루다와 마리오가 언덕 위에서 바다를 함께 보는 장면을 중앙에 배치했다. 화면 하단은 해안과 섬을 드로잉으로 처리했고, 대시인의 권유로 은유의 세계에 직접 걸어 들어가는 마리오의 모습을 담았다.


둘을 감싸 안고 있는 것이 별이 빛나는 밤하늘이다. 절대적인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 그것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은유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별처럼 빛나는 은유가 ‘베아트리체 루소’이다. 네루다가 마리오에게 섬의 아름다움을 한 마디로 말하라고 한다. 마리오는 망설이지도 않고 “베아트리체 루소!”라고 말한다. 그녀는 그가 ‘계속 아프고 싶었던’ 가장 사랑하는 여인이다.

그녀의 이름이 아름다움의 전부가 되어버린, 이 영화 속 최고의 은유이다.



이 영 철 작업 텍스트


* 명제: 은유의 바다에 별은 뜨고

* 규격: 35.5 x 53.7cm

* 재료기법: 파브리아노지 위에 혼합기법

* 제작년도: 2008년


* 작품설명

순박한 섬마을 청년 마리오는 이데올로기에 떠밀려난 칠레의 망명시인 네루다에게 전해질 우편물만 전담하는 임시 배달부로 대시인과의 만남을 시작하면서 인생에 전환점을 맞이한다. 청년은 존경심과 경외감으로 시인을 대하고, 시인은 낯선 타국에서 한 청년의 순수한 마음에 이끌린다. 그렇게 두 사람은 특별한 우정을 쌓아가고 마침내 시인의 도움으로 마리오는 사랑까지 성취한다. 그러나 얼마 후 시인은 떠나고 청년의 한시적 일자리도 끝이 나지만 시인을 향한 한결같은 그리움으로 별, 바람, 종소리, 태어날 아이의 심장소리 등 시인이 머물던 섬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녹음기에 담아 부치려는 작업은 오히려 이때부터 시작이 된다. 그러나 많은 시간이 흐르고 그 시인이 다시 그 이탈리아 작은 섬을 찾아 그 아름다운 마음을 전달받게 되었을 때에는 이미 그 친구는 이데올로기가 충돌하는 현장에서 오로지 시인을 위한 헌시를 바치려다 불의의 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난 후였다...


영화 전체가 한 편의 아름다운 시와도 같은 이 영화를 거듭 볼 때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우리들이 자꾸 잃어버리고 있는 사랑, 우정, 시, 열정, 순수함 등에 대해 새삼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특히 은유에 대해 시인과 청년이 주고받던 대화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에게도 큰 가르침을 주지요...

인생은 어둠속에서 시작해 잠시 빛의 세계로 왔다가 다시 어둠속으로 돌아가듯, 영화도 비슷한 상황을 거쳐 갑니다. 영화든 인생이든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보석처럼 남아 별과같이 빛나는 기억이 되고요. 그래서 제 경우는 극장에 들어설 때마다 어머니의 자궁 속에 편안하게 앉아서 온갖 세상을 다 들여다보며 나만의 별 만들기를 할 수 있어서 특히 영화보기에 심취하는 듯도 합니다.

이번 작업 바탕의 검은 색은  바로 영화와 삶이란 빛의 세계를 떠받쳐주는 근원적인 힘, 그리고 마리오의 죽음과 네루다의 망명생활을 복합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화면 중심에서 빛나는 한 컷은 당연히 시인과 청년배달부의 교감과 우정을 표현한 것입니다. 화면 하단 드로잉으로 처리한 해안과 섬, 그리고 청년의 실루엣은 대시인의 권유에 따라 처음으로 은유의 현장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는 마리오와 어느새 그 뒤를 따라가고 있는 우리들이 느끼는 감정이입의 연속성, 동질성의 끄나풀과 같습니다.

결국 은유가 있는 인생과 영화의 어둠은 절망과 단절이 아닙니다. 어둠이 짙을수록 사랑, 우정, 희망으로 떠오르는 별이 빛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들이 사는 세상 그 어떤 절대적인 어둠의 바다에도 별이 뜨는 한 그건 바로 사람과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만한 곳이 아닐까 생각해보며 이 영화에서 채집한 별들을 모아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줄거리

이탈리아의 작은 섬에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필립 느와레)가 망명 온다. 작은 섬은 세인의 관심을 모으고, 우체국장은 전 세계에서 오는 네루다의 우편물을 위해 어부의 아들 마리오(마시모 트로이지)를 고용한다. 마리오는 여자에게 인기가 많은 네루다의 비법을 알고 싶어 그에게 접근한다. 네루다와 쌓여진 우정과 신뢰를 통해 마리오는 아름답고 무한한 시와 은유의 세계를 만나게 된다. 또한 마리오는 아름답지만 다가갈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베아트리체 루소(마리아 그라지아 꾸치노따)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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