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나無 사이

 

 청소년기가 막 끝날 무렵 한동안 폭풍 같은 시간을 만났었다. 느닷없이 길을 잃었는데 앞날은 아득하고 막막하기만 해서 메마른 눈물먼지만 가슴깊이 날려 보내던 때였다. 하루는 마을 뒷산 깊은 골짜기로 들어갔다. 꽉 막힌 가슴이 뻥 뚫리도록 고함이라도 원 없이 질러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가니 전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장엄한 기운을 내뿜으며 서있는 그들의 생생한 존재감에 기가 질린 까닭이다. 그날 비로소 나무도 나와 똑같은 생명체라는 것을 실감하고 마음깊이 특별한 애정도 품게 되었다.

 나무는 살아가는 동안 지상에서 유일하게 중력을 거스르며 자란다. 특히 자연 그대로의 나무는 오로지 선채로 비바람을 맞이해 환경의 영향대로 모양을 만들고 해와 달, 별과 구름을 만난다. 흔히 <자연스럽다>고 하면 대게 나무를 먼저 떠올리는 것도 중력이나 정형화된 형태로부터 자유로운 특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나무는 아픔도 서서 견디며 다른 존재에게는 둥지를 틀 보금자리를 내주고 시원한 그늘과 열매를 나눈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죽음과 부활을 거듭해 자신의 시간을 다 소진한 후에야 비로소 중력의 손길에 온 몸을 맡긴다. 여전히 서 있던 그대로 가지와 줄기, 둥치에 이어 뿌리까지 사라지는 나무는 마침내 나無가 된다.

 생겨난 모든 것 궁극적으로는 사라지듯이 나무 또한 나無로 돌아가지만 이들의 소멸은 단순한 허무나 덧없음을 넘어 좀 더 푸르고 깊은 정신의 항구에 닻 내리고 있다. 존재했던 시간만큼 생장과 소멸의 과정을 오로지 하늘을 향한 채로 견디는 강인한 상징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나무를 지상과 우주를 연결하는 메신저로 규정하고 신성시 해온 이유도 이런 나무의 속성과 상징성에 연결되어 있다. 이 지점에서 보면 나무는 기존의 가치와 질서라는 세속적 중력을 뿌리치고 창조정신의 줄기와 가지를 자유롭게 키워내는 예술인들의 모습과도 이미지가 겹쳐진다.

 대구미술협회가 진행 중인 향토미술 1세대 작가 아카이브(archive)작업의 일환으로 지난 해 말부터 올해 초 까지 네 분의 원로 서양화가를 인터뷰했다. 대구 추상화단 첫 세대 대표작가로 암울했던 시대정신을 현대성과 예술성이란 그릇에 치열하게 담아낸 이영륭, 점점 사라지고 있는 향토의 풍경을 소박하게 기록해온 자연주의자 강운섭, 객관적 사실화풍으로 출발해 주관적 구상화로 일가를 이룬 김건규, 서양 재료와 기법을 한국적 정서로 비벼 자연과의 합일에 매진해온 최학노 선생님이 바로 그들이다.

 이 사업은 대구 문화예술 발전에 헌신해온 미술인들에 대한 기초자료 조사와 보존을 통해 지역 미술사의 흐름을 정리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래서 네 분 선생님의 삶과 예술을 육성 그대로 비디오 영상에 담기위해 두 세 차례씩 개별 방문을 하며 작업을 했다. 나는 그 과정에서 이 분들이 고단한 근 현대사의 능선을 오르내리는 동안 변함없이 미술이란 하늘만 올려다보며 살아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신의 일에 평생을 바친 사람은 큰 나무와 같다는 생각도 더욱 선명해졌다.

 물론 좀 더 시야를 확장시켜 우리 사회를 둘러보면 모든 분야에서 한 자리를 지키며 거목이 된 사람들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오직 자신의 직업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서 이제 이 시대의 정신이 되어있는 아름다운 원로들의 숲이 있다. 그 나무들 사이를 거닐며 후학들이 여유로울 수 있음은 존경과 감사로 받아들일 일이다.

 장맛비가 드세던 날 남문시장 작업실 창 밖 아주 오래된 은행나무를 하염없이 내다보며 생각했다. 이 비 그쳐도 나무는 여전히 저 자리에 서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더 많은 시간이 흘러 나무가 사라져도 저 자리에는 여전히 비가 내릴 것 또한 충분히 짐작이 된다. 우주의 시간으로 들여다보면 잠시 왔다 가는 것은 너무나 오래 머물고, 오래 머무는 것은 참으로 잠깐 스쳐지나 간다.

 나무는 나無가 되고 그것은 또다시 나무로 이어진다. 인생과 예술도 그렇게 빙글빙글 돈다. 이것이야말로 대자연의 확고한 순환법칙이다. 나도 이 도시 속에서 내가 존경하는 선배와 스승들처럼 한 그루 그림나무로 살고자 욕망한다. 나무와 나無 사이를 한바탕 소풍 다니는 동안은 나에게 배달되는 세상의 시간을 더 흥겹고 진실하게 사랑하며 소비하기를 열망한다.


이 영 철 (화가)
매일신문 <문화칼럼> 2011년 7월 29일(금)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41884&yy=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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