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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詩·그림을 만나다] 샤이닝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2008년 7월 12일 (토)

 

한때 이런 우스개가 유행했다.

모녀가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런데 아버지가 다른 층을 계속 누르는 것이다. 딸은 “아빠, 다른 층 눌렀어!”라고 했다. 어두운 표정의 아버지가 서서히 고개를 돌리며 얘기한다. “내가 네 아버지인줄 아나?”

공포영화라고 하면 ‘13일의 금요일’의 제이슨이나 ‘나이트메어’의 프레디와 같은 연쇄살인마를 떠올린다. 그러나 더 무서운 것은 사실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서 나온다. 멀쩡하던 아빠가 어느 날 미쳐서 도끼를 들고 죽이려고 덤비는 것만큼 소름끼치는 일이 있을까.

완벽주의 감독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이 그려내는 공포가 그렇다.

산 속의 호젓한 호텔. 가을까지 사람들로 붐비지만 겨울에는 폭설로 문을 닫는다. 겨울 동안만 관리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 소설을 쓰는 잭에게는 더 없이 좋은 기회, 고급스러운 호텔에서 제왕처럼 보내면 되는 휴가 아닌 휴가다.

폭설로 길이 끊기고, 이 호텔에는 잭의 가족만 남는다. 무료한 일상, 소설을 쓰는 잭의 타이프라이터 소리만 넓은 호텔에 울린다. 아들은 세발 자전거로 호텔 로비를 오가고, 엄마는 넓은 호텔 주방에서 요리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이 호텔에는 악령들이 살고 있다. 쌍둥이 딸을 도끼로 무참하게 살해한 아버지의 악령도 있고, 죽은 이들의 영혼도 떠나지 않고 이 호텔을 맴돌고 있다. 그 약령들이 아빠에게 찾아온다. 그들의 사주를 받아 도끼를 들고 죽이려고 덤벼든다.

스탠리 큐브릭은 거대한 악령의 소굴에 빠진 잭이 서서히 미쳐가는 과정을 섬뜩한 이미지들로 그려내고 있다.

특히 도끼로 문짝을 내리찍으면서 아내에게 “여보, 나 집에 왔어(Honey! I'm Home)”라고 달콤하게 얘기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다. 특히 보통 때도 범상하지 않은 잭 니콜슨이기에 더욱 리얼하다.

문자의 공포라고 할까. 아들 데니가 문에 쓰는 글자는 급한 클로즈업과 째지는 듯한 음향효과로 인해 공포의 극치를 보여준다. ‘REDRUM'이라 써놓고는 계속 ‘레드럼! 레드럼!’이라고 고함친다. 아들을 안고 어쩔 줄 몰라 하던 엄마는 거울에 반전된 글자를 본다. 그 글자는 살인이란 뜻의 ‘MURDER'이다.

그리고 열심히 소설을 쓰는 남편의 수백 장이나 되는 원고에는 단 한 문장만 빼곡히 들어차 있다. ‘All work and no play makes Jack a dull boy'이란 속담이다. ‘공부만 하고 놀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는 뜻이다. 그동안 열심히 일한 잭이 결국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는 사실을 알고 아내는 경악한다.


화가 이영철은 “잭의 사이코적인 기질이 가장 강렬하게 묻어나는 것이 문자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작품 속에 텍스트를 넣었다.

‘샤이닝’의 압권은 마지막 미로 부분이다. 아들 대니를 죽이기 위해 정원의 미로에 들어간 잭이 결국 빠져나오지 못하고 미로를 헤매다 도끼와 광기, 마지막 호흡까지 내려놓는다. 도끼를 들고 홀로 걸어가는 잭의 뒷모습을 핏빛으로 채색했다. 폭포처럼 복도에 쏟아지던 피의 범람이다.


시인 문인수도 ‘미로’에 주목하고 있다. 벼랑으로 치닫는 남자의 광기가 길 한 가닥으로 난 미로에서 길게 빨려 들어가는 이미지를 그려냈다.

‘산악’ ‘자물통’ 등의 시어를 통해 참으로 단단하게 고립된 악령의 거대한 아가리를 공포스럽게 그려내고 있다.


이 영화 속의 악령들은 흔히 공포영화에 나오는 처절한(?) 귀신의 모습이 아니다. 산발하지도 않았고, 피를 철철 흘리지도 않는다. 깨끗한 양복에 고상한 말을 하는 젠틀맨이고 우아한 여인이다. 고급스런 호텔만큼 귀족적이다.

스탠리 큐브릭이 주목한 것이 이것이다. 그는 흠잡을 데 없이 안전하다는 것 속에 도사리고 있는 공포, 그것이 가장 끔찍하다는 것을 역설한다. 그것은 인디언을 학살해 만든 미국이라는 나라의 안전틀을 은유한 것이다. 또 미로에 갇혀 허덕대는 현대인의 삶도 투영된다.

탁월한 공포 이미지와 고급스러운 은유까지 대구의 폭염을 식히기에 이만한 영화가 없어 보인다.



이영철의 샤이닝 작업설명서


파일명 / 080705-02

작품명제 / 미로의 정원에 눕다.

작품크기 / 21 X 29cm

제작기법 / 아크틸 페인팅과 포토샵 혼용, 디지털 프린팅


붉은 바탕은 화면에 등장하는 살인과 영화 초반에 대니와 결말부분에서 웬디가 목격한 피의 범람을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화면 좌우에 있는 초록과 사각형태의 배치는 미로의 정원입니다. 잭의 사이코적 기질에 대한 전율이 가장 강렬했던 부분이 바로 아내 웬디가 잭이 타이핑한 텍스트의 실체를 확인하던 그 순간이어서 그 장면을 부각했습니다.

그리고 미로의 정원에서의 결말... 대니의 도망 장면이나 잭의 추격 장면에 대한 핸드 핼드  앵글이 실어 나르는 공포감보다는 마지막에 혼자 미로를 헤매다 마침내 도끼도, 광기도 이승에서의 마지막 호흡까지도 내려놓고야 마는 잭의 마지막 뒷모습이 자꾸 마음에 남아 그 이미지를 추가했습니다. 왜냐하면 한때 사랑했을 아내도, 그리고 그들의 분신인 자식도 마음속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에 살의와 광기만 남아 이미 가슴도 영혼도 잃어버린, 죽어 마땅한 이 남자는 살아있으면서 이미 죽어버린 삶의 미로를 헤매고 있었기에 그저 전율과 공포로만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잭만큼 극단적인 경우는 드물겠지만 요즘 시대에도 물리적이든 정신적이든 미로의 정원을 헤매는 사람은 여전히 많은 듯합니다. 산다는 것이 어쩌면 헤매는 과정 그 자체일지도 모르니 아마 인간이 사는 곳 어디에서나 이 정원은 영원히 존재하겠지요...


작업은 먼저 미로와 피의 이미지를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후 촬영을 해서 파일을 만들고, 영화의 장면을 포토샵으로 합성한 후 텍스트를 추가했습니다. 그렇게 만든 자료를 디지털 프린팅용으로 최종 완성했습니다.


샤이닝 (The Shining, 1980)

공포 | 영국 | 146 분

감독 : 스탠리 큐브릭

출연 : 잭 니콜슨(잭 토랜스), 셜리 듀발(웬디 토랜스)


거장 스탠리 큐브릭의 걸작 호러무비

교사인 잭은 부인과 어린 아들을 둔 가장이다. 그는 여름과 가을에만 문을 열고 긴 겨울 동안에는 폐쇄하는 매우 큰 호텔을 겨울 동안 가족과 함께 봐주기로 한다.

그런데 잭은 예전에 이 호텔에서 잭처럼 겨울 동안 그 호텔을 관리하던 한 호텔급사가 정신이상으로 자신의 가족을 끔찍하게 살해했던 사건이 일어 났었다는 얘기를 듣는다. 하지만 잭은 그런 얘기에 아랑곳 하지 않고 조용하게 머물면서 소설을 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가족을 데리고 호텔을 봐주기로 결정한다.

폭설이 내려 외부와 완전 고립된 거대한 호텔에서 단 세 명이 생활하는데, 잭은 고독 속에서 점점 끔찍한 악몽과 환상에 시달리기 시작하고 급기야 자신의 부인과 어린 아들에게 달려드는데...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시계 태엽 오렌지> 등으로 잘 알려진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미국내에서는 공포 소설의 대가로 일컬어지는 스티븐 킹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겨울 동안 눈 때문에 고립되는 호텔 사정 때문에, 호텔의 관리자로 고용되어 가족들과 호텔에서 머무르다가 과거에 있었던 살인사건의 악령에 휘말려 호텔을 공포의 도가니로 만든다는 이야기인데, 내용보다도 이 영화는 다양한 연출 기법으로 유명하다. 카메라 워크, 음악 배열, 편집, 색상에 이르기까지 섬세하게 계산된 듯이 적절하게 배치가 이루어져 있고 또 장면장면 잘 조화를 이룬다. 끝장면에 등장하는 눈쌓인 미로같은 공간과 그 위로 반사되는 조명, 그를 따라서 길게 움직이는 이동씬은 아주 압권이다. 잭 니콜슨의 트레이드 마크인 킬러스마일이 이 영화에서처럼 섬뜩하게 보여지는 작품도 없을 것이다. 원래는 146분인데, 미국에서는 119분짜리 쇼트 버전인 커트판으로 소개되었다.

큐브릭은 이 영화에서 핸드 헬드 카메라를 응용한 스태디 캠을 직접 고안하여 유려하고 아주 인상적인 씬을 만들어냈다. 특히 마지막 눈 쌓인 미로에서 펼쳐지는 추격장면은 조명과 스태디 캠으로 공포영화 사상 가장 뛰어난 명장면. 바르톡의 클래식 음악 또한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 부인과 아들을 살해하려고 하는 설정 때문에 한국에 정식 소개되지 못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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