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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 키가 너무 커서 늘 힘들어 하는 문형렬선생님...당신이 가진 천재성 보다 인간 문형렬을 늘 응원합니다...

 

   꿈에 보는 暴雪


              문    형    렬


갑자기 코피가 옷섶을 적시고 우리는 눈 내리는 산을 오른다

쓰러지고 꺾어지고 산을 오르며 이 달겨드는 눈발로도 몸을 파묻지 못하거니

어느 불꽃인들 몸을 말릴 수 있는가?

둘러보아도 산마루마다 번쩍이는 눈보라는

살아 있는 것들의 핏줄을 한 가닥씩 비우고

하룻밤의 平和를 위하여

자작나무 껍질 한 짐과 참나무 등걸을 지고 돌아와

젖은 나무에 불을 지피는 우리는

한 마리씩의 쓸쓸한 딱정벌레.

불꽃은 젖어서 손바닥 껍질을 한 겹씩 벗기고

어딘가 이 겨울밤을 타오르는 넋들이 그리워

젖어서 우리는 불꽃 속으로 떠난다


눈이 내린다. 불꽃 속으로 창자를 긁어내는 오늘밤의 눈보라는

꿈꾸는 속눈썹에 방울방울 쉼없이 솟아오른다

젖어라 나무들이여, 딱정벌레 몸뚱이여

天地四方 우리는 외로와서 온몸에 불꽃을 달고

그 불꽃 갈피 없이 눈보라 속으로 흩날리어,

어딘가, 그리운 넋들의 사랑은

젖은 어깨 가득히 寂寞의 불꽃은 갈기갈기 쓰러지고

아아 우리는 눈사람이 되어 숨죽이며

스물다섯 해 자란 등뼈를 깎는다

눈길을 간다, 천둥을 치면서

얼마나 많은 가뭄이 우리의 가슴을 적시는가

서로의 가슴에 벼락을 때리면서

눈 내리는 산에 불을 지른다


지치도록 눈보라는 온산을 헤매고

한 삽의 그리움도 쳐내지 못한 채 우리는 퍼질러앉아

다시 터져 흐르는 코피를 훔치면

목 놓아 아른거리는 꽃잎의 불꽃,


보이나니, 눈보라 속에

저 퍼붓는 그리움 속에 서럽고 싱싱하게

산등성이마다 살아오르는 넋들의 불꽃이 보이나니,

더욱 기승을 부리는 눈보라의 살갗이여

말 없어라, 말 없어라

우리의 살갗은 아프지 않구나

우리의 두 눈, 우리의 두 귀, 우리의 어깨뼈,

말 없는 스물다섯 살, 푸르디 푸른 등뼈 조각조각이

이밤 저리도 흐느끼는 눈발로 퍼붓나니,

산등성이마다 불을 켜는 넋들아

우리는 하나씩 도깨비불이 되어,

눈물 흘리는 도깨비가 되어

꿈결에 지는 暴雪의 화살, 목 메이는 불꽃으로 온산을 헤매다가

이제는 통곡의 산등성이에 이르러

꽃잎같이 타올라 넋이 되는구나.



선생님과 함께 한 책 작업...책을 내 주신 친구 임동헌선생님은 올해 안타깝게도 운명을 달리하셔서 문형렬선생님의 서러운 봄날을 여느 해 보다 더 길게 하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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