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詩·그림을 만나다] 록키(1976)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매일신문 2008년 11월 1일 (토)

  

‘록키’를 얘기하자면 실베스타 스탤론을 빼놓을 수가 없다.

1970년대 중반 그는 무명의 배우였다. 근육질의 몸으로 간혹 어덜트 무비(성인용 영화)에 출연하며 혹독한 무명의 설움을 겪고 있었다. 틈틈이 32편의 각본을 썼지만 모두 영화제작자로부터 퇴짜를 맞았다. 서른 살의 나이에 33번째 작품을 썼을 때, 그의 아내는 임신 중이었고, 수중에는 불과 106달러가 남아 있었다.

‘록키’라는 제목의 이 대본은 다행히 명제작자 어윈 윙클러의 눈에 띄었다. 제작팀은 록키 발보아 역에 버트 레이놀즈나 로버트 레드포드와 같은 스타를 기용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실베스타 스탤론은 자신이 주연을 맡는 조건을 내걸었다. 무명의 신인에게 모험을 걸고 싶지 않았던 제작사는 제작비 100만달러라는 제한을 걸었다. 실패의 부담을 줄이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영화는 대성공을 거뒀다. 미국에서만 5천600만달러가 넘는 수입을 올렸다. 실베스타 스탤론은 ‘록키’ 한 편의 영화로 아메리칸 드림의 화신으로 영웅이 됐다.

뒷골목 건달이 일약 헤비급 세계 챔피언에 도전하고, 마침내 챔피언이 되어 힘들게 챔피언 벨트를 유지하다가 은퇴하기까지의 과정이 5편의 시리즈로 그려졌다. 1990년 5편에 이어 2006년 만년의 록키가 다시 챔피언에 도전하는 ‘록키 발보아’ 까지 총 6편의 시리즈는 실베스타 스탤론의 인생유전과 흡사하게 닮아 있다.

‘록키’는 감동적인 스포츠 영화다.

월남전 패전으로 의기소침한 미국에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는 평가도 있지만, 록키라는 개인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인 영화다. 삶의 희망도 없이 살아가는 3류 건달 선수가 모든 난관을 뚫고 자신감을 찾아가는 과정은 모든 이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특히 사각의 링에서 펼치는 마지막 15분의 시합장면은 불굴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잘 보여주었다.


시인 이규리는 벌겋게 부어오른 록키의 얼굴을 때마침 무르익은 가을 산에 비유하고 있다. 입술이 터지고, 핏줄로 불거진 얼굴을 초록이 지쳐 든 단풍산으로, 맞아도 맞아도 다시 고개를 들이미는 그를 코뼈가 다 부서진 능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쓰러지지만 몇 번이나 다시 일어서는 록키를 ‘아름다운 비참’이란 말로 세워주고 있다. 바닥을 치지 않고는 오르지 못하는 법. 경기가 끝나고 ‘재시합 하겠느냐?’는 질문에 ‘오늘 맞은 걸로 충분하다’는 그의 말은 혼신의 절정을 보여주었다.


화가 이영철은 성조기가 그려진 팬티를 입은 복서를 전면에 내세웠다. 반을 나눠 흑인 챔피언 아폴로 크리드를 왼쪽에, 뒷골목 하류인생 이탈리안 종마 록키 발보아를 오른쪽에 배치했다.

그는 둘의 격투를 “백인우월주의에 대한 거부감을 희석시키는 대리전”이라고 했다. 아메리칸 드림의 화려한 조명 아래 가려져 있는 ‘강한 미국’에 대한 집착이 한 치의 양보 없이 녹아 있다는 것이다.

왼쪽은 빛과 영광의 중심에 서 있지만 사실은 허상만 가득한 흑인 챔피언이고, 오른쪽은 실패에 익숙해져 있지만 거칠고 어두운 현실을 따뜻하게 헤쳐나가는 록키이다. 허구와 현실이 한 쌍이 된 복서의 실루엣이다.

그렇지만 둘은 같은 팬티를 입고 있다. 미국이란 틀이다. 이니셜 R은 록키를, 그리고 이니셜을 감싼 노란색은 애드리언의 따뜻한 마음을, 모서리 색 면은 사각의 링을 상징한다.

위대한 것은 결과가 아니다. 맞서는 과정이고,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정신이다. 두렵고, 고통스럽지만 외면하지 않고 맞서 싸우는 힘, 그 힘은 다름 아닌 사랑에서 나온다.

눈이 찢어지고, 코뼈가 부러진 상처의 순간에 관중석을 향해 ‘애드리언!’만 외치는 록키의 절규는 그래서 더욱 절절해진다.



록키 1976 이영철 작업텍스트

grim-si@hanmail.net


람보와 더불어 1980년대 미국이 추구해온 <강한 나라>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아이콘인 록키는 한 무명복서의 도전과 사랑, 그리고 실패를 통해 진정한 승리자가 된다는 아메리칸 드림을 담아낸 스포츠 영화의 매력을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듯합니다.

진정한 승리란 감동이 실종된 결과보다는 그 결론으로 다가가는 시간 속에 채워지는 삶에 대한 치열한 도전 과정 그 자체에 담겨있다는 메시지야말로 대중의 폭 넒은 공감을 얻어내기에 충분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기도 하구요. 사실 록키가 그렇게 ������난 안돼!������란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어깨 처지고, 문득 내가 패배자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이 들곤 하는 사람들에게 통렬한 카운터펀치를 날리며������무슨 소리! 당신이 바로 승리자야!������라고 외쳐대는데 열광하지 않고 배겨낼 관객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게다가 메이드 인 아메리카란 상표가 붙은 모든 분야에서 그들이 은밀하게 합의해온 백인우월주의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도 흑인 챔피언 아폴로 그리드와 뒷골목 하류인생 이탈리안 종마 록키 발보아의 대리전으로 전환시킴으로써 탁월하게 희석시켜버렸지요.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 영화가 쏘아대는 아메리칸 드림의 화려한 조명아래 가려져 있는 <강한나라 미국>에 대한 집착만은 여전히 한 치의 양보조차 불가능해 보여서 개운치 안은 뒷맛을 고스란히 남겨두고 있기도 합니다.


작업은 록키가 담고 있는 역설을 통한 긍정에 주목했습니다. 그래서 화면의 반을 빛과 영광의 중심에서 있는 듯 보이면서 사실은 형식적 결과만을 움켜쥐고 있는 흑인 챔피언 아폴로 그리드의 신화화된 허상으로 채우고, 나머지 반을 실패에 익숙해져 있지만 거칠고 어두운 현실을 따뜻하게 헤쳐 나가는 과정을 거쳐 완전한 패배를 통해 완벽한 승리를 쟁취하게 되는 강인한 현실의 캐릭터 록키 발보아로 나누어 허구와 현실이 한 쌍이 된 복서의 실루엣을 그렸습니다. 물론 그들이 입고 있는 운동복은 환상이든 현전이든 여전히 강한나라 미국을 추구한다는 변함없는 의지를 대변하기 위해 성조기를 그려 넣었습니다. 이니셜 R은 짐작하는 대로 이 역설의 중심축인 록키이고 이니셜을 감싼 노란색은 애드리언의 따뜻한 마음을 의미하며 화면 모서리 색 면은 사각의 링을, 짙은 회색 바탕은 척박하고 전망이 불투명하던 그의 현실 상황을 상징합니다.


궁극적으로 이 작업에서는 주인공이나 우리들이나 인생의 어느 모퉁이에 이르러 그 어떤 모순된 한계상황에 부딪쳐 현실과 한판 승부를 펼치게 된다하더라도 강인하고 불굴의 의지를 담은 개척자정신으로 당당하게 맞서야 하며 그 투쟁의 의미는 결과가 아니라 맞서는 과정 그 자체의 정신성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정신을 쓰다듬어주는 힘은 다름 아닌 사랑이라는 사실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록키(Rocky, 1976) 영화정보

감독:존 G. 아빌드센

출연:실베스타 스탤론, 탈리아 샤이어

러닝타임:119분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편집상 수상


1975, 11 필라델피아 빈민촌에 사는 청년 로키 발보아는 4회전 복서로 근근히 살며 뒷골목 주먹으로 시채업자 수금원 노릇을 겸하고 있다. 가족이래야 애완견과 금붕어 한 마리가 전부다. 그리고 사실은 애완동물가게 점원 애드리런을 짝사랑하며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젊은이이기도 하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인생을 뒤바꿀만한 기회가 갑자기 찾아오는데 현 헤비급 챔프 아폴로 그리드가 독립기념일 이벤트로 타이틀 방어전을 진행하던 중 도전자 그린이 시합 5주를 남겨두고 뜻하지 않은 부상을 당해 경기를 포기하면서 난관에 부딪치게 된 것이다. 이미 거액의 홍보비가 들어가고 시합 자체를 취소할 수는 없게 되어버린 상황에서 기회의 나라 미국, 그것도 독립기념일 이벤트에 걸맞게 무명 복서에게 챔피언과 싸울 도전권을 주는 파격적인 이벤트로 시합의 양상이 급진전 된다. 그리고 이 행운이 이탈리안 종마에게 찾아든 것이다.

록키는 애드리언에게 마음을 고백하고, 그녀와 그녀의 오빠이자 록키의 친구인 가게주인 폴리의 격려와 그리고 과거 챔피언을 키운 적이 있는 동네 체육관 코치 노인 미키의 지도로 발보아는 맹훈련에 돌입한다.

드디어 경기당일 아폴로는 3라운드 이내의 손쉬운 KO승을 장담하며 로키를 제압하려 덤비지만 오히려 1라운드 불의의 다운을 당하며 단번에 경기장의 분위기는 충격과 긴장감 속으로 빠져든다. 그리고 15라운드 내내 이어지는 혈투....

록키의 원래 목표가 15라운드를 버티는 것이었고 그는 그 목표를 이룬다. 판정결과 예상대로 그는 패배했지만 모두가 열광하는 경기장의 승자는 록키 발보아였다.


록키는 수많은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속에서 오직 사랑하는 연인 애드리언을 외친다. 그리고 그것은 비록 게임에는 졌지만 비로소 자신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뭔가를 이루어낸 가장 아름다운 외침에 다름 아니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