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지 아니?

배고픈 건 잘 참아도
배아픈 건 정말 못 참는 사람

불의를 보면 놀라울 만치 인내심이 강해도
불이익에 대해서는 목숨을 내거는 사람

스스로의 실수는 잘 잊어도
남의 잘못은 절대 못 잊는 사람

나는 실수 없이 늘 최선을 다하는데
남의 잘못 때문에 세상살기 힘들다는 사람

신은 굳게 믿지만
인간은 결코 못 믿는 사람

자신은 굳게 믿어도
남은 절대로 믿지 못하는 사람

지나가는 사람에게는 친절하면서도
늘 보는 사람에겐 인색하고 옹졸한 사람

이 글을 쓰면서 다행히도
나는 아니라는 사람...

누군지 아니?

내가 아픈 건 미련하게 견디면서도
남 아픈 것 때문에 잠못 드는 사람

일 때문에 사납게 소리치다가도
귀가길 석양을 보며 눈물 흘리는 사람

늘 웃음이 넘쳐 질투나고 부러웠는데
알고 보니 나보다 더 힘든 일을 견디는 사람

배고픈 건 아주 잘 참아도
오페라, 전시회 놓치고는 못 사는 사람

컵라면 하나로 점심을 때워도
커피는 핸드드립 조용한 창가에서 마시는 사람

성질 급하고 목청 높게 잔소리 심해도
매표소, 주문대 앞에서는 꼭 줄서는 사람

뭘 도와달라고 하면 불평불만 넘쳐도
어느새 해결해놓고 가버리는 사람

바쁜 일에 힘들어 허덕이면 나타나
바쁜 일과 중요한 일은 다르다며 속 뒤집는 사람

이 글을 읽으며 다행히도 절대
나는 아니라고 우기는 사람...



이영철 화가
<누군지 아니> 전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