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글

 

한 아이가 있습니다. 너무나 맑은 영혼을 기지고 있어서 깊은 계곡의 물처럼, 청정호수와 바다처럼, 모래알갱이 한 알 마음까지도 다 들여다보이는 아이입니다. 그러나 아이가 사는 세상은 아이의 마음과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유독 혼자만 속이 다 들여다보이는 스스로가 이상하고 불만스럽습니다. 심지어 날아가던 새들의 놀림감이 되기도 하니, 갈 곳도 없고 자신감도 점점 줄어들어 괴롭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어둠 속으로 숨지 않습니다. 굴참나무 할아버지의 사랑과 격려를 통해 자신의 본 모습이 가진 장점을 서서히 깨달아갑니다. 마침내 마음을 활짝 연 아이는 따스한 햇살을 가슴가득 받아들이고 스스로 빛이 됩니다. 이제 빛이 된 아이는 온 세상을 달리며 세상에 환한 사랑의 빛을 뿌리며 행복을 완성합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구하지 못해 힘겨워하며 살아갑니다. 가끔 자신을 희생하며 남을 구하느라 사는 사람을 보게 되면, 부럽다, 존경스럽다, 이상한 일이다 하며 말이지요... 사실 이세상은 언뜻 보면 대체적으로 착한 사람, 순수한 사람들이 손해를 보게 구성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약한 모습은 숨기고 강해지려고 애를 씁니다. 물론 그 과정에 자신만의 고운 마음 빛깔을 잃어버리고 불행해지곤 합니다. 따지고 보면 세상이 자신을 불행하게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미리 불행하지 않겠다고 세상을 따라가다가 오히려 자신의 모습을 잃고 불행을 자초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내내 제 마음 속에도 아직 자라지 못한 아이가 하나 꼬물거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를 불러내 함께 놀며 아이가 하자는 대로 따라 그렸습니다. 그리고 내가 가진 열등감, 소심함, 나약함, 예민하고 여린 마음이야말로 아주 큰 장점임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림 속 아이가 스스로 세상 속 빛이 되게 도와준 내 마음 속 아이도 이젠 햇살 가득한 환한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이제 이 책이 세상 속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이 아이가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을 아이를 불러내어 함께 환하고 환하기를 소망합니다.

 

 

이영철(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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