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 친구


 화가로서 사회생활을 막 시작할 무렵이었다. 어느 날, 당시 봉덕동 작업실로 내 또래로 보이는 말쑥하고 소탈하게 생긴 낯선 청년이 불쑥 찾아왔다. 부친이 하던 사업체 하나 물려받은, 문화와 경영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이미 나에 대한 이력을 훤히 꿰고 있었다.

 그림에 대한 열정만큼은 활화산처럼 뜨겁던 때라 예상치 못한 팬이 나타난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커다란 사건이었다. 대화를 나눌수록 문화에 대한 코드가 잘 맞았고, 젊은 사업가답게 그가 줄줄이 언급하는 사회 여러 계층에 걸친 인맥도 아주 넓었다. 무엇보다도 내 마음에 든 것은 그런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부유한 티를 내지 않고 조용하며 겸손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날 당장 막걸리 집으로 직행했다. 그는 나에 대한 주변 여러 지인들의 관심도를 전해주었고 작품에 대한 비교적 날카로운 지적도 해주었다. 그 후 우리는 가끔 만나서 산책과 산행을 했다. 한번은 나를 데리고 앞산공원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 산 정상을 넘어가더니 저편 드넓은 임야가 모두 다 그의 사유지라며 자신의 이름이 적힌 산책로 팻말도 보여주었다. 나는 내심 능력과 꿈을 두루 지닌 그가 자랑스러웠다.

 그렇게 친해져 마침내 친구로 지내게 된 얼마 후 그는 경주 출장 간다며 들렸다. 가는 길 이미 내 그림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던 그 곳 지인 사무실에 그림 몇 점을 걸어주고 돌아오는 대로 작품비를 받아다 주겠다고 했다. 당시는 작품판매를 대행해줄 화랑이 정해지지 않은데다가 친구의 부탁이니 거절할 이유도 전혀 없었다. 기쁘게 그림을 골라 포장을 한 후 땀 흘리며 작품을 실어서 차가 시야에서 멀어지는 내내 손까지 흔들어주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는 다음 날, 다음 달, 다음 해에도 오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늘 그 친구가 찾아와서 만났을 뿐, 회사나 집조차 가 본 적이 없었고 전화번호는 끊겨있었다. 혹시나 무슨 사고라도 났나 싶어 나중에야 주변에 이 상황을 애기해 보니 앞산 공원 일대는 전부 국유림이라는 사실도 나 말고는 다 알고 있었다.

 그 후 단 한 번도 그 친구에 대해 듣고 본 것이 없다. 나야 스스로 그림을 싸서 손까지 흔들어 보냈으니 신인화가 그림과 마음을 훔친 작은 추억 정도로 생각한다. 그러나 중년이 된 지금까지도 사회 어디에도 종적이 묘연한 것은 안타깝다. 그 친구가 자신은 물론 적지 않은 시간을 함께하며 쏟아내던 문화와 예술에 대한 비전까지도 사기를 친 것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화가 이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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