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에서 온 편지

 자연과 더불어 형성된 유년의 감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나이가 들수록 실감한다. 자연은 세상을 눈으로만 보게 하지 않고 다양한 감각기관을 열고 온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또한 오감을 통해 느낀 것을 자유롭게 비비고 섞어 내면을 아름다움으로 채우게 해준다. 자연환경이 인간의 심리와 정서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온갖 수생식물과 반딧불들, 밤하늘 별 밭을 보고 뛰놀며 자란 사람과, 소음과 콘크리트 구조물 사이에서 신음하는 식물 몇 종을 지켜보며 성장한 사람이 가지는 정서적 빈부 차이는 당연히 클 수밖에 없다.

 누구나 자연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알고 생태와 환경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개발 논리를 뒤따라오는 눈앞의 크고 작은 이익과 직면하면 슬그머니 눈을 감아버리곤 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필자 작업의 주된 관심사는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자연을 훼손시키는 만큼 인간의 순수한 심성도 함께 파괴되는 데 대한 안타까움을 전하고 싶은 까닭이다. 청둥오리와 왜가리가 사라지고, 왕버들이 시들며 참붕어와 버들치가 자취를 감추는 동안, 사람들 또한 꿈이나 우정에 대한 가치, 용서와 화해의 여유, 따뜻한 눈물이 담긴 사랑 한 조각의 의미를 망각해 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자연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의 연장선상에서 작품 활동 외에 금호강 팔현마을과 반야월 일대의 안심습지, 금호강과 낙동강 합류 지점의 달성습지, 구미 해평습지 그리고 창녕 우포, 사지포, 목포늪과 쪽지벌 주변의 풍경과 꽃, 나비, 새들을 카메라에 담고 약도를 그려 블로그에 올리는 일에 집중해 왔다. 대구와 근교에는 유명한 생태습지가 많지만 아파트단지가 밀려들고, 보가 건설되거나 직강공사로 인공 둑을 만드는 과정에서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 어쩌면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사이버공간 속에라도 붙들어 두고 싶은 마음의 흔적들이 카테고리를 채우고 있다.

 그런데 자연과 환경 문제에 대한 생각이 적극적으로 확장되는 계기가 하나 생겼다. 지난여름 의성 어느 초등학교에서 온 아주 큰 플라타너스 원목 탁자를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릴 일이 있었다. 시골 교정에서 100년이 넘도록 비바람을 맞으며 해와 달과 함께 운동장을 뛰놀던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아이들을 지켜보았을, 이 할배나무 몸에 직접 그린 작품은 의미가 좀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해맑은 아이와 꽃잎이 펄펄 날리는 봄을 담은 이 그림은 최근에 작가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인연 따라 영천에 있는 대안학교인 산자연학교로 보내졌다.

 그 과정에 생태와 환경운동가로 유명한 신부님 한 분을 만났다. 마침 신부님은 경산성당에 봉직한 시기와 산자연학교가 있는 오산으로 온 사이, 지역 신문에 이년 반 동안 매주 연재한 칼럼을 모아 출판을 준비하고 있었다. 내용은 신부님이 지켜본 이곳 지역 사람들과 자연환경, 역사와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한 깊은 통찰과 사랑을 담은 것이다. 본문에 그림을 넣어줄 화가가 필요했던 터라 필자가 자연스럽게 작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래서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위해 공동선을 추구하는 신부님의 철학을 담은 ‘오산에서 온 편지’를 미리 읽은 첫 독자가 되었다.

 오산에서 온 편지에는 한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대대손손 살아온 토박이들과 생태 및 환경에 관한 애정 어린 시선이 곧 지구촌 전체의 공감과 보편성으로 확대되는 환경 사랑의 메시지가 들어 있다. 신부님의 많은 글들은 작고 사소하지만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생존의 근원에 관한 현실적인 문제 제기와 대안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산자연학교와 오산은 이제 더 이상 한 마을과 학교의 이름이 아니라 신부님이 추구하는 생태와 환경운동의 정신적 중심지를 상징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온난화, 병들어가는 가축, 오염 문제 등을 불안해하고 불평만 할 것이 아니라 환경을 파괴하는 우리 주변의 작은 것부터 함께 줄여나가는 행동의지가 중요하다. 건강한 자연을 지키는 일은 곧 인간의 아름다운 심성과 행복한 미래를 지키는 일이다. 오산에서 온 편지는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그림과 사진을 통해 회복시키고 싶은 필자에게, 자연에 대한 공동체적 책임과 의무 그리고 참여와 실천의 문제로 의식을 확산시켜 주었다.


이영철/화가

매일신문 문화칼럼 2011년 12월 16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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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72793&yy=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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