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풍경 속으로 사랑이 왔다

kit금오공과대학교갤러리 2019

화가 이영철 초대전


2019, 08, 05(월)~08, 30(금)

오프닝행사 / 2019, 08, 06(화) p.m. 15:00

작가와의 만남 / 2019, 08, 12(월) p.m. 15:00


구미시 대학로 61 (학생회관 B1)

월~토 a.m. 10:00~p.m.18:00 (일요일, 공휴일 휴관)



캔버스의 시인을 위한 노트

김 선 굉(시인, 미술평론가)


1

이영철의 미학 코드는 사랑이다. 그 사랑이 끝을 알 수 없는 강물처럼 그의 작품 세계를 가로질러 흘러왔고, 흘러가고 있으며, 붓을 던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흘러갈 것이다. 그 사랑이 그의 인생과 함께 흘러왔으며, 현재진행형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까지는 사실이다. 그 사실을 토대로 나는 이영철의 사랑의 강물이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캔버스 위로 흘러넘칠 것이라고 유추하는 것이다. 나는 몇 년 전 그의 두 번째 미학 에세이 사랑이 온다(2014, 해조음)를 리뷰하면서, 그를 캔버스의 시인이라고 명명했다. 무엇을 선언적으로 말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나 걷잡을 수 없는 에너지로 캔버스 위에 자연과 인생과 사랑을 아로새겨 나가는 화가를 캔버스의 시인이라고 말한 내 직관은 거의 정확하며 자금도 유효하다.

 

2

그러면 이영철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화폭에 사랑을 아로새겨 나갈 것이라는 유추는 건강하고 행복한 것인가. 그리고 그를 캔버스의 시인이라고 선언적으로 말한 나의 직관은 정확한 것인가. 일단은 건강하고 행복한 것이며, 일단은 정확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나의 유추가 또 다른 관점에서는 틀릴 수 있기를 바라며, 나의 직관 또한 상당 부분 오류이기를 바란다.

우선 이영철은 미학 이데올로기 관점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아방가르드 작가가 아니다. 그의 작품에는 문명에 대한 비평적인 사유가 스며들 틈이 없으며, 인간을 사유의 중심에 둔 리얼리즘이 작동하지도 않고 있다. 그의 조형 언어는 그 어떤 미학 이데올로기를 향해 각을 세우지 않으며, 그 어떤 사회 현상을 향해 대안을 제시하지도 않고 있다. 참여적인 관점에서 이러한 것들은 지식인으로서, 나아가서는 예술가로서 직무의 유기 차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될 여지가 있다.

이영철이 그걸 모를 리 없다. 그러나 그는 화가로서의 아이덴티티를 참여가 아닌 화해로, 저항이 아닌 융화로, 분열이 아닌 통합으로, 미움이 아닌 사랑으로 밀고 나가는 데서 찾고 있다. 그 결과 그의 작품 세계는 황금분할된 캔버스 위에 동화적 상상력으로 자연을 예찬하면서, 보일 듯 말 듯 사람을 자연의 일부로 아로새기는 표현주의적 세계를 아로새겨 나가고 있다. 그의 작품은 우리의 내면 깊숙이 흐르고 있는 추억과 우정과 사랑과 그리움의 강물을 들여다보게 하는 주술이 담겨 있다. 그의 창작 에너지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마음과 함께 우리의 시선과 마음을 강력하게 끌어당기고 있는 것이다. 그의 대표작 사랑이 온다/ Here comes love는 별이 빛나는 캄캄한 밤하늘 아래 아름답게 펼쳐진 벌판을 펼쳐 보여주고 있다. 대담한 수평 분할로 강화된 들판이 끝없이 펼쳐져 있으며, 들판 가득 개망초꽃이 소금을 뿌린 듯 흐드러져 있다. 사람의 마음을 아득하게 하는 몽상적 풍경이다. 우리 모두에게 <, 내 가슴에도 저런 들판이 펼져져 있었던 적이 있었지> 하면서, 눈을 감고 추억의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이 작품은 좀더 가까이 다가와서 자세히 보라고 말하고 있다. 마치 숨은 그림 찾기처럼 들판 양쪽 끝에서 마주보며 걸어오고 있는 두 사람이 있다. 사랑이 오고 있는 것이다.

 

3

 이영철의 작품은 대단히 노동집약적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저 별들을, 저 꽃들을 일일이, 그야말로 일일이 캔버스에 아로새겨 나가는 열정과 노동 위로 그는 사람을,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과 사랑을 띄워 올리는 것이다. 사랑을, 제대로 된 사랑을 제대로 띄워올릴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한 노동이라도 못 할 게 없다는 작가의 뜨거운 정신이 방전된 우리의 삶에 강한 에너지를 충전해 주고 있다. 이러한 그의 즐거운 노동은 그의 작품 세계 전반을 꿰뚫고 흘러가고 있는 창작 메카니즘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그의 캔버스에는 꽃이 오고, 나무가 오고, 새가 오고, 까치호랑이가 오고, 물고기가 오고, 꽃병이 오고, 술병이 오고, 집이 오고, 달이 오고, 별이 오고, 사람이 온다. 이영철은 이 모든 것을 사랑으로 추상하여 캔버스에 아로새긴다.

 

홀로 길을 걷다

꽃을 만났다.

하염없이 꽃을 따라가다가

꽃밭에 들어섰다.

끝없이 펼쳐진 꽃밭 속을

다시 홀로 걷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저만치 앞에서 그대가

환하게 웃고 있다.

 

사랑이 왔다.

 

이것은 그의 작품 세계의 단면을 나이테처럼 선명하게 보여주는 한 편의 아름다운 서정시다. 그러나 그는 이 작품을 굳이 시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이런 글을 그림과 함께 힐링 아트라고 말하고 있다. 문학으로서의 시는, 신서정과 도시 서정을 중심으로 하는 현대시는 섣불리 아포리즘의 경계를 뛰어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그림과 글은 거침 없이 아포리즘의 경계를 넘어서고 있다. 아포리즘이 추구하는 미학은 힐링의 미학이며,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글을 시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이영철을 캔버스의 시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의 그림이 서정시 본래의 건강하고도 섬세한 에스프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는 칸딘스키의 점, , 면과 세잔느의 색채 미학, 원근법을 넘어서는 표현주의적 기법, 동화적 상상력과 신화의 세계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시정신으로 이영철 류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4

이영철은 책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자신의 작품 세계를 중심으로 한 그린 꽃은 시들지 않는다(2011. 해조음)사랑이 온다(2014, 해조음) 등 두 권의 미학 에세이집을 펴냈으며, 혜민스님의 스테디셀러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2012, 쌤앤파커스)을 비롯한 여러 권의 시집과 동화책의 삽화를 그렸다. 글과 그림을 동시적으로 밀고 나가는 작업은 그림 산문집 강가의 아뜰리에(1976, 열화당)를 펴낸 장욱진(1918~1990) 이후 어떤 화가도 시도하지 않은 방법으로 작품 세계를 전개해 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서지학적, 출판문화적 관점에서도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

나는 장욱진 이후 한 세대를 훌쩍 건너뛰어, 이영철이 더 적극적이고 본질적인 자세로 그 맥을 잇고 있다는 데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고 보니 달과 별은 물론 꽃과 나무와 새와 사람이라는 소재의 측면과 그 소재들의 유니크한 표현, 그 소재들을 수직으로 배치하는 구도의 측면에서 그의 작품이 장욱진의 작품 세계와 에꼴화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5

나는 중견 작가(이영철은 지가 지금 중견인지도, 곧 원로가 된다는 사실도 까맣게 모르고 있을 것이다) 이영철이 오래 전부터 대구에 생의 닻을 내리고 작업을 하고 있다는 데서도 적지 않은 의미를 찾고 있다. 그는 지금 이런저런 미학 이데올로기와 지역 콤플렉스를 홀쩍 넘어서서, 자신의 세계를 뚝심 있게 밀고 나가고 있다. 나는 이영철을 잘 알고 있다. 그는 너무 순수해서 탈이다. 나는 그에게 한 말씀을 전한다, 그 탈이 너의 힘이다, 그 힘으로 해나가야 할 일이 이런저런 게 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