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서사의 바람소리

 

  답사를 한창 다니던 때의 일이다. 봉화에서 부석사 가는 길에, 동행한 시인께서 무심코 가리키는 팻말을 보고 홀린 듯 문수산 꼭대기에 자리 잡은 축서사로 향했다. 계획에 없던 일이라 가볍게 둘러보고 올 생각이었지만 막상 산 입구로 들어서고 보니 교행이 불가능 할 정도로 좁고 가파른 곳이었다. 그렇게 되돌릴 수도 없는 길을 비바람에 젖어 한없이 올라가다 보니 그날 따라 온 산에 어둠도 서둘러 내렸다.

  별 수 없이 스님 한 분에게 하룻밤을 청하니 저녁 공양과 과일까지 들여놓아 주셨다. 그 날 밤새 바람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작은 절집이라 빈 방이 넉넉지 않아서 함께 잠을 자게 된 스님의 기나긴 한숨소리를 들었다. 스님은 이제 막 머리를 깎고 세상을 내려놓느라 하루하루가 힘들다 하셨다. 들고 있는 것 보다는 내려놓는 것이, 그리고 내려놓는 것 보다는 보낼 줄 아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그 당시는 나도 잘 모르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보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평온도 찾아온다는 것을 알아차리기에는 11월 궂은 날씨 탓에 유별나게 부는 바람이 너무나 매서웠다.

  그러나 스님의 사연 많아 보이는 뒷모습과 산사를 스치는 무심한 바람 때문이라고만 하기에는 설명하기 힘든, 깊은 푸른빛을 띤 특이한 소리는 계속되었다. 그 바람소리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나 속의 불안과 만나더니 점점 자라나서 여행에 지친 몸과 마음을 밤새 휘젓고 다녔다. 그렇게 새벽이 가까워지고 심신은 나른해져 가는데 느닷없이, 무슨 절손님이 아침예불도 모르고 빈둥거리느냐는 주지스님의 호통소리가 그 바람 따라 매섭게 실려 왔다.

  영혼을 후려치는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서둘러 일어나 비몽사몽간에 부처님께 인사를 하고 계를 받은 지 일 년 되었다는 개진스님을 도와 어두운 마당을 쓸어나갔다. 바로 그 때 해발 900m나 되는 이곳 산꼭대기 절집으로 지팡이 하나에 온 몸을 의지한 할머니 한 분이 느릿느릿 올라오고 있는 모습이 줌인 한 렌즈의 피사체처럼 한눈에 들어왔다. 내가 차를 몰고 올라온 거리를 가늠해보면 아무리 가까운 마을에서 오는 길이라 해도 지난 밤 자정께는 집을 나섰을 것이라는데 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 작고 깊은 시간을 거느린 절집에 부는 바람소리가 더욱 세차게 내 가슴 속을 휩쓸고 지나갔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아서 없는 것이고 현재는 존재한다고 자각하는 순간 시간의 물살을 따라 과거가 되어버리니 또한 없는 것이다. 그래도 늘 우리는 시간을 따라 몸을 끊임없이 이동하며 생생한 현재라는 흐름의 느낌을 움켜쥐려고 살아간다. 이처럼 원래 없는 것을 있다고 믿고 붙잡으려고 살다보니 느닷없이 불안하고 자주 불편하다. 습관처럼 오지 않은 것을 걱정하고, 이미 가버린 것을 놓지 못한다. 사실 집착과 미움에 빠져 안일하고 나태하게 실수를 반복하고, 결코 채워지지 않을 욕망에 매달리는 마음의 정체도 불안이 거느리고 있는 담쟁이 넝쿨이다.

  축서사의 바람소리에는 늙고 고단하거나 낡고 초라하게 소멸되는 순간까지도 변함없이, 온 몸과 마음을 다해서 새순처럼 돋아나는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을 귀하게 만나고 사랑해야 한다는 삶에 대한 법문이 실려 있었다. 그래서 그 후로는 작업이 나태해지거나 반복된 일상에 적당히 적응해 갈 때마다 느닷없이 귓전을 때리는 축서사의 그 바람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있다.

 

이영철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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