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동화-고향의 노래 / 117cm x 91cm / 캔버스에 아크릴릭 / 2012년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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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지병으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셨습니다...아카시아 꽃 향기 가득한 어버이날, 어머니를 보내드렸습니다...이제 하염없이 우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해드릴게 없는 못난 아들 때늦은 사모곡을 불러봅니다...이 그림은 어머니가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메고 계실때 잠시 시간을 내어, 더이상 늦기전에 어머니를 위해서 그린 그림입니다...어머니 이제 이 세상 모든 고단함, 슬픔, 걱정 다 내려놓으시고 아버지와 형님 만나서 부디 행복하세요...()()()
어머니의 일기장
16년 전 유난히 더위가 일찍 찾아왔던 그해 초여름, 평소 고혈압으로 고생하시던 어머니가 급기야 쓰러지셨다. 남편 일찍 떠나보내시고, 큰 아들마저 사고로 가슴에 묻은 후 그래도 용케 버티시다가 갑자기 중환자실에 누워 계신 모습을 보니 가슴이 찢어지는 듯 했다. 아내와 나는 어디에라도 기대고 싶을 만큼 마음이 절박했다. 5인실인 우리 병실에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비슷한 처지의 환자와 가족들이 무거운 공기에 짓눌려 있었다. 며칠이 지나자 심각한 위기는 넘겼지만, 머릿속의 출혈 때문에 어머니는 고개조차 돌리지 못하고 정면 벽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계셔야 했다. 마침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생각났다. 창밖으로 시선을 옮길 수 없다면 어머니 시선이 머무는 저 벽에 무언가 볼 수 있는 것이 있으면 분명 심리적인 위안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흰 벽에 작은 그림을 그려 걸었다.
<부처님이구나!> 어머니의 반응이 뜻밖에 크게 나타나자 갑자기 불안하고 답답하던 마음이 사라졌다. 그날부터 어머니를 간호하는 틈틈이 정신없이 그림을 그리고 바꿔 걸기를 반복했다. 어머니의 간호와 그림 그리는 일이 동시에 이루어지자 모든 것이 전혀 다르게 긍정적으로 보이기 시작했고, 다른 병상에도 손바닥 만 한 그림을 하나씩 걸어주자 어둡던 병실에도 내 마음이 전염되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한 달이 지나가자 내가 병실에서 그림을 그리는지, 화실에서 간호를 하는지 잘 분간이 되지 않았다. 43일과 한나절, 모든 이들의 도움 덕분에 마침내 어머니가 걸어서 병실을 나서는 것을 보며 생활과 그림이 결코 삶 속에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그림 한 조각이 우리들 생활 속에 어떤 의미와 가치로 존재해야 옳은지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다. 작고 사소한 일상의 동화를 건져 올리는 내 작업의 좌표가 되었다.
그 후 어머니의 투병생활은 16년 간 이어지셨는데 삶에 대한 의지보다 더 간절했던 것은 자식들 고생시키지 않고 조용히 세상을 떠나게 해달라는 바램이셨다. 며칠 전 어버이날 아카시아 꽃향기 가득한 이른 아침에 어머니를 이십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곁으로 배웅을 해드렸다. 54세의 나이에 마침내 고아가 된 나는 평생 가난과 더불어 고단한 삶을 사신 어머니를 생각하니 어찌 그리 잘 못 해드린 일들만 끊임없이 생각나던지...이제는 그저 눈물 흘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길 잃은 아이가 되고 말았다.
고향 집 마루에 앉아서 유품을 정리하다 보니 어머니의 일기장이 나왔다. 16년 전, 59세 때부터 최근까지 쓰신 한 여인의 투병과 삶에 대한 의지, 자식걱정,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장남인 형에 대한 그리움, 사위와 며느리에 대한 고마움, 아들과 손자에 대한 간절한 기도의 기록이었다. 어머니이기 이전에 여리고 겁 많은 한 사람의 깊고 따스한 눈물과 희망의 시간들을 함께 읽으며, 이제 먹먹한 가슴을 안고 또 우리들의 시간을 채워가야 할 가족들은 어머니의 간절한 바람을 지켜드리기로 했다. 지난날 슬금슬금 쌓여 이제 제법 큰 벽이 되어있던 서로간의 미움과 서운함을 있는 대로 다 풀어헤치고 용서와 화해를 통해 모두 허물어버렸다.
어제 어머니가 평소 다니시던 고향집 가까운 절에서 49제 초제를 올렸다. 이제 더 이상 집이나 땅이 아닌, 우리 가족의 추억과 삶의 시간이 쌓인 박물관이 되어버린 시골집에는 동생 내외가 들어와 살기로 했다. 유난히 식물을 잘 키우시던 어머니가 아픈 몸을 이끌고 일구신 텃밭의 약초와 야채들은 여전히 어머니의 사랑을 이어받으며 자라서, 서울과 대구 등 집안 형제와 가족들의 식탁으로 그리움을 거느리고 찾아올 것이다. 어머니는 가셨지만 우리들 가슴 속 깊은 곳 슬픔을 밀어내고 따뜻한 사랑과 환한 오월의 햇살과 웃음으로 다시 오셨다.
어머니...이제 근심과 걱정 다 내려놓으시고 아버지와 형을 만나 행복하시기를 두 손 모읍니다. 당신의 아들이어서 자랑스럽고, 나의 어머니이셔서 참 고맙고 감사합니다...
이영철(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