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 둥지


나는 일 욕심이 좀 과한 편이어서 바쁘다는 것을 습관화된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대부분 잡다한 것이었지만 막상 뿌리치기도 쉽지 않은 그 일들은 심심치 않게 가족과의 갈등도 낳고, 스스로도 휴식을 그리워할 시점에 올 때 까지 별 뾰족한 대안 없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고만 있었다. 그러던 지난 어느 일요일 밀린 원고와 작업들을 한꺼번에 해치울 생각으로 서둘러 작업실로 갔다.

그러나 일진이 심상치 않음을 예감한 것은 화실에 도착해서야 이동전화기 챙기는 것을 잊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부터였다. 작업실에는 전화가 없기 때문에 외부와의 소통수단은 자연스레 단절되었고, 정말 공교롭게도 그 동안 건전지 한번 교체해준 기억이 없던 벽시계조차 뽀얀 먼지를 뒤집어쓴 채 멈춰있다는 것을 발견 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막 일을 시작하려는데 정전이 된 것이다.

순식간에 모든 것이 정지되어 난감한 가운데 어둠이 계속되고 창밖의 소음과 채광의 변화 등을 통해 감각적으로 시간의 미세한 흐름을 느끼게 되자 필자는 비로소 그토록 염원하던 휴식의 기회가 눈앞에 왔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 때 무엇보다도 당혹스러웠던 점은 그날의 일련의 계획을 포기 또는 변경해야 하는데 따른 심한 갈등 때문에 말처럼 쉽게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또한 매일같이 화실을 드나들며 습관적으로 대하던 모든 사물들까지 아주 생소하고 낯설게 다가와 거듭 나 자신을 혼란스럽게 했다.

우리들은 늘 일류가 되려고 혈안이 되어 수많은 일들과 정보의 홍수 속에 파묻히다 보니 시간과의 전쟁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점점 지쳐가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휴식과 자유를 꿈꾸지만, 마음이 어느새 삼류로 밀려나 여유가 들어설 빈틈조차 확보하지 못하기 일쑤다.

나 또한 예외 없이 그저 바쁜 삶 속에서 버려지는 정신적 손익분기점을 별 저항 없이 넘어서서 어느새 메마르고 비인간화 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고, 정신의 둥지를 지어두지 못한 다면 아무리 애를 써도 이미 절반은 실패한 삶이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영철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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