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 선생님과 고물 자전거


음악과로 출발했던 K예고에 미술과가 생겨 출강을 하게 되자 나름의 기대감도 컸다.

그러나 한 학기가 채 가기도 전에 예기치 못한 갈등들이 슬슬 노출되기 시작했는데 예술이란 청결한 정신성에서 비롯된다는 신념을 지닌 교장선생님의 운영의지 앞에 조소과의 흙먼지, 소묘실의 연필가루, 수채화와 디자인실의 물감얼룩은 그야말로 공공의 적이었던 것이다.

교장선생님과 우리들의 불화는 하나 둘 불거지다가 마침내 고물자전거 사건으로 이어졌다. 실기실 벽에 비닐로 도배를 한 후 전전긍긍하며 수업을 하던 조소과가 마침내 창고를 새로 지어 이사를 가자 나도 기쁜 마음으로 구경을 갔다.

그리고 거기 한 구석에 버려진 그야말로 뼈대만 남은 고물 자전거를 발견했다. 그 자전거는 이젠 기능성은 완전히 상실했지만, 부서지고 휘어지며 자연스러운 조형미는 더욱 강화되어 지난날 화려했을 시간들을 추억하며 아름답게 쇠락해 가고 있었다.

한 눈에 자전거의 가치를 눈치 챈 나는 지체 없이 그 보물을 메고 소묘실로 올라갔고 당연히 그 날부터 아이들은 그 자전거만의 미적 본질을 흥미롭게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다음 주에 출강을 해보니 자전거가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는데 알고 보니 놀랍게도 그것을 내다버린 장본인은 교장선생님이셨다. 그 며칠 사이 아이들은 버린 자전거를 다시 찾아와 그림을 그리고 교장선생님은 실기실에 들릴 때마다 야단을 치며 내다버리기를 반복하다 이젠 행방조차 묘연하다는 것이다.

앞바퀴가 없는 자전거의 몸체가 실기실 바닥에 흠집을 낼지도 모른다는 것이 이유였다. 신선한 조형적 소재로 우리를 매료시켰던 그 자전거가 그분에게는 실기실을 위협 하는 흉물이상이 아니었음을 깨닫는 순간 나는 아득하게 넓은 강을 마주하고 선 느낌을 받았다.

내가 아는 한 미술교육은 아이들의 내부로부터 솟구쳐 나오는 자유와 창조의 문을 활짝 열어주어야만 그들의 앞날도 그만큼 높고 넓어지는 법인데  실기실 흠집 날지도 모른다고 그림 그릴 환경을 규제하거나 심지어 소재까지 제한한다면 과연 저 아이들의 미래는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그 때 교장선생님이 반복해서 내다버린 것은 고물자전거가 아니라 아무 곳에서나 쉽게 구할 수 없는 미적 정신성의 가치였고 바로 그 점이 아이들 앞에 서 난처해진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이영철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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