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약돌에 관한 사유


지난 해 봄, 금호 강변을 거닐다 우연히 장엄한 돌밭을 보았다.

아득한 상류 어딘가의 바위산에서 떨어져 나와 수없이 많은 날들을 굴러내려 왔을 그들은 내 시선 닿는 끝까지 강 따라 무리지어 와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놀랍게도 현대사회 속을 헤쳐 나가는 우리들 인간군상과 너무나 흡사해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일찍이 내 의식 속에 각인된 조약돌은 온 세상 천지에 흔하디흔하고, 고만고만한 부피와 질량을 지닌 이미지의 유사성으로 인해 마치 보편의 대명사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날 가만히 마음을 내려놓고 들여다본 조약돌들은 석질이나 무늬, 형태와 빛깔, 경도와 함유물이 서로 너무나 다르고, 저마다 독특한 표정까지 지니고 있어서 새삼 경이롭기까지 했다. 그 수많은 돌 하나하나는 엄연히 실존적 존재였고, 제각기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 나는 가능하면 자주 돌밭에 갔다. 수석을 위한 탐석 때문이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의 그들을 보러 갔다. 폭풍우가 휩쓸고 간 후 달려간 돌밭은 어느새 상류로부터 떠밀려온 새로운 조약돌로 빈틈없이 채워져 있었다. 내가 얼마 전에 보았던 그 수많은 돌들은 황망히 짐 꾸려 굴러가느라 생긴 생채기 어루만지며, 하류 어디쯤에서 고단한 몸을 추스르고 있을 터이다.

급류 속에서 숨 가쁘고 치열하게 진행되었을 조약돌들의 거대한 이동을 떠올리니, 인간이나 자연 모두에게 적용되는 순환의 섭리에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들의 삶처럼 돌들도 하나의 과정으로 존재하며, 저렇게 어느 곳으로든 개의치 않고 굴러 가는 동안 모나고 못난 육신을 환하고 둥근 정신의 극점으로 이끌어 갈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점점 작아지다 마침내 모래 먼지로 흩어지리라...

따지고 보면 비슷한 듯 하면서도 전혀 다른 것들이  인연이란 끈을 잡고 모여 교감하다 때가 되면 느리게 , 혹은 빠르게 변화하고 이동하며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 나가는 게 어찌 인간이나 돌 뿐일까? 지천에 널린 꽃들이나 나뭇가지부터 우주만물이 다 그렇지 않던가!

삶의 본질이란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개체와 개체가  내부와 외부의 정신적, 물리적 에너지의 영향 속에 집단 혹은 개인별로 소통하고 관계하는 과정 자체 속에 있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리 평범하고 사소한 것일지라도 소중하게 여기며, 매 순간마다 덧없이 흩어지는 일상의 파편 속에서 삶의 의미를 채굴하고 참다운 가치를 건져 올리며 살아야 옳지 않을까?

그렇게 돌 한 점에도 스며있는 신의 암호를 읽어 가다 보니 상생과 순응, 조화의 지점에 서서그림을 통해 세상과 화해하기 위한 나 자신의 몫이 무엇인지 이해가 되는 듯도 했다.

이영철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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