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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詩·그림을 만나다

향수 (Perfume)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매일신문 2008년 4월 12일 (토)

문인수 시

이영철 그림

사랑하는 이와 헤어진 후 마지막까지 남아 괴롭히는 것이 그(그녀)의 냄새라고 했던가.

시신경에 박혀 있던 사랑하는 이의 모습이 흐릿해지고, 혀끝에 감도는 촉감마저 아련해지지만 냄새는 끝까지 기억의 끈을 놓지 않는다.

냄새는 욕망이다.

꿈틀거리는 사타구니에서 풍기는 시큼하고 비릿한, 원초적 본능 같은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광장에 모인 수백 명의 남녀들이 옷을 벗어던지고, 육욕의 향연을 벌인 것은 인간이 추구하는 질펀한 욕망의 시각화다.

지문처럼 냄새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렇게 볼 때 냄새는 곧 존재의 의미이기도 하다.


‘향수’는 1985년 독일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쓴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할리우드식 스릴러와 달리 독일문학다운 은유와 상징이 가득한 스릴러다. 대표적인 것이 냄새를 정체성과 연결시킨 설정이다.

죽음의 화신, 그루누이는 냄새가 없다. 그래서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않는다. 기억하더라도 곧 죽고 만다. 썩은 생선 내장 더미에 그를 출산한 어머니도 곧 교수형당하고, 그를 팔아넘긴 보호소 대모며, 그에게 향수 제조법을 가르친 향수제조사도 끔찍한 죽음을 맞는다. 그가 다가가도 여인은 알아채지 못한다.

냄새가 없다는 것, 존재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굴 속에서 자신에게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절망한다.

그는 태어나서는 안 될 운명이었고, 태어나도 존재하지 않았고, 죽어도 기억해주는 이가 없었다. 마치 향수와 같은 존재다. 세상에 없는, 그러나 수킬로미터 밖에서도 털을 부들부들 떨며 날아드는 유혹의 페르몬인 것이다.

냄새는 이미 몸을 떠난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사물의 존재와 영혼의 존재를 실체하는 은유의 대상이다. ‘코’라는 직접적 대상을 제목으로 한 문인수의 시는 ‘몸을 떠난 이름’을 쓰고 있다. 꽃의 냄새가 이미 꽃을 떠났듯이, 여인의 향기는 이미 여인의 떠난 것이다. 그래서 채집하듯 여인의 목숨을 거두지만, 그루누이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에게 살인은 향수를 제조하는 비커나 깔때기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화가 이영철은 화폭 가득히 원색적인 색으로 채우고 있다. 붉은 죽음의 향기가 위쪽에서 흘러내리고, 아래에서는 노란 자두를 팔던 여인의 향기가 풍겨나오고 있다.

그림에는 숫자들이 암수표처럼 박혀 있다. 1738년 7월 17일 5번째 사생아로 태어나 13세 때 고아원을 나와 10프랑에 흥정되다 결국 7프랑에 팔려가 하루 15, 16시간 중노동을 하던 그루누이의 삶이다.

컬러의 조각들로 알파벳 ‘P’를 꼴라주했다. 다채로운 인간의 욕망과 그것이 만들어낸 향기(Perfume)라는 뜻이다. 단속(斷續)적으로 묘사된 것은 그 자체의 본질이 덧없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림에는 두 가지의 피가 흐른다. 흰 피는 아래로 흐르고, 회분홍빛 피는 우측에서 좌측으로 흐른다. 흰 피는 아름다움에만 눈이 먼 그루누이의 섬뜩하리만치 순수한 열정을 뜻하고, 회분홍빛 피는 그래도 용납할 수 없는 원죄, 탁하게 오염된 피를 뜻한다. 본연의 붉은 피에 그루누이의 흰 의도가 뒤섞여 만들어진 피다.

화가는 “두 피가 교직(交直)되는 것은 결코 만날 수 없는 이상과 현실, 욕망과 피의 대가, 죽음을 껴입고 덧칠되는 삶의 모순을 나타낸 것”이라고 했다.

그루누이는 마지막 눈물 한 방울을 흘리고 산화한다. 욕망으로 점철된 그의 삶은 눈물 한 방울만 남기고 아무 형체도 없이 증발해버린다.


그 눈물은 ‘장미 백만 송이를 따 끓여낸 영롱한’ 향수다. 시인은 그 눈물이야 말로 진정으로 번지는 영혼의 향수라 이름한다.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매일신문 2008년 4월 12일 (토)


▨ 향수(Perfume: The Story Of A Murderer, 2006)

감독:톰 튀크베어

출연:벤 위쇼, 더스틴 호프만

러닝타임/등급:146분/15세 관람가

줄거리:18세기 프랑스. 악취 나는 생선 시장에서 태어난 그루누이(벤 위쇼)는 천부적인 후각의 소유자다. 그러나 죽음의 화신이다. 난생 처음 파리를 방문한 날, 한 여인의 매혹적인 향기에 끌린다. 그리고 그 향기를 소유하고 싶은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힌다. 향수의 낙원이라 불리는 그라스(프랑스 남동부 지역)에서 본격적인 향수를 만드는 데 몰두하는 그루누이. 그러나 그라스에서는 아름다운 여인들이 잇따라 나체의 시신으로 발견되는데….


1. 영화를 본 나의 개인적인 생각

영화를 보면서 줄곧 허망한 감각을 쫒아가는 인간의 욕망과 그 추상적 욕망을 한 순간 이나마 소유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엄청난 대가에 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장 바티스트의 어머니는 비록 지상에서 가장 고단한 삶일지라도, <살아가기> 위해 아이를 버리게 되지만, 그 아이는 살아납니다. 그리고 그가 세상에 극적으로 편입되는 과정에 어머니의 목숨이 대가로 치러집니다. 그에게 씌워진 이 운명적인 도식은 여인의 향기에 취해 우발적으로 첫 살인을 저지른 후부터 이어지는 그르누이 삶의 궤적 속에 빈틈없이 채워집니다. 어쩌면 후각으로 당해야 하는 형벌이 있다면 거의 극형에 가까운 장소가 될지도 모르는 곳에서 죽음과 부패의 냄새를 통해 처음으로 세상과 조우하는 그가 하필 절대후각의 소유자라니 그 상황의 강렬함이 전율스럽습니다.

그리고 그 천부적 후각이야말로 바티스트가 이 칙칙하고 끈적거리는 현실을 넘어 최상의 향기로 넘치는 세상으로 가는 유일한 사닥다리이고, 그의 우발적인 첫 살인 이후 한 계단 한 계단 자신의 욕망의 천국으로 딛고 올라가는 걸음마다 살인이라는 대가를 지불해나가야 하는 모순이 반복됩니다.

도대체 아름다움이란 형용사를 붙인 이미지나, 소리들, 냄새와 맛들, 그리고 촉각까지 우리들이 줄기차게 매달리는 이 감각들에 대한 집착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무엇을 얻고 싶어서, 아니면 잃고 싶지 않아서 혹은 잊으려고 욕망에 집착하는 것일까요? 사실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것들이 인간 본연의 살아<있음>이나 <존재함>의 본 자리로부터 얼마나 먼 곳에 있는가를 결국 알게 되는데도 말입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끊임없이 죽어가야만 하는 미약한 존재이므로 그 불안하고 불안정한 시공간을 어떤 형태로든 잊고 싶은 게 본능이고, 그 불편한 감정의 여행길에 의식을 달래는 도우미의 역할로 종교와 더불어 예술도 확고한 자리를 확보한 것이겠지요. 나아가 술을 마시고, 향기에 취하고, 이미지에 현혹된다거나 심지어 옷을 고르고 화장을 하는 행위 등등... 어쩌면 살아 있다고 믿는 이 일상의 모든 행위야말로 확장과 증폭의 차이만 너그럽게 봐 준다면 그르누이를 포함해서 그가 살아가던 시대와 인간의  욕망과 집착이나, 지금 이곳에서 살고 있는 나와 우리들의 고민이나 별로 달라진 것은 없어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으로 태어나 모든 것을 걸만큼 강렬하게 추구하고자 하는 무엇인가가 운명적으로 있다는 사실만은 명백하게 신선했습니다. 인간이 덧없이 매달리는 욕망의 허망함을 그린 그림들을 들여다본 후 마지막으로 생각했습니다.


가지고 싶은가?

그렇다면 대가를 지불할 준비도 되었는가?

그리고 그렇게 찰나적 감각에 집착하느라 허우적거리며 내민 손가락사이로 소리 없이 빠져나가는 실존적 의미 따위는 슬쩍 눈감아도 좋을 만큼 지금 당장 내가 딛고 서 있는 삶의 감각적 의미가 목을 죄어오는가....

어제 섬진강을 다녀왔습니다. 하동과 평사리로 이어지는 벚꽃 길 따라 이미지와 향기가 장엄하게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날이라면 바티스트가 가지려고 한 것을 나도 한번 가져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아름다움에 매달리는 터널의 저쪽 출구가 뻥 뚫린 허망함뿐임을 충분히 짐작한다 해도 그 정도 대가는 지불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살의를 느낄 만큼  매혹적인 아름다움 때문에 지금 당장 내가 죽을 지경이었으니까요...!


2. 작업에 담은 의미

1) P /  Perfume

컬러로 된 조각들로 P를 꼴라주한 것은 다채로운 인간의 욕망과 그것이 만들어낸 향기들, 그리고 그 자체의 본질이 덧없음을 암시하고자 함

2} 그림에 등장하는 숫자들

장 바티스트의 탄생일이 18C, 1738년 7월 17일에 5번째 사산아로 태어난 상황, 13세 때 고아원을 나와 10프랑에 흥정되다 결국 7프랑에 팔려가 하루 15~16시간의 중노동 속에서도 탁월한 생존력을 보여주는 등 그의 삶을 증거 하는 수치들을 제시 했다.

3) 여인의 얼굴

그르누이가 탐닉하는 향기의 주체인 여성성을 대표함, 가장 아름다운 향기가 나는 여성의 죽음을 통해  향수가 생산되고, 그 향수의 주 소비대상도 결국 여성이 되는 아이러니를 나타내고자 했다.

4) 화면 좌측의 세로방향 하얀 피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하면서까지 아름다움 자체를 추구하는 그르누이의 섬뜩하리만치 순수한 열정을 표현했다.

5) 화면 위 측 가로방향 회분홍빛 피

아무리 목적이 순수해도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살인에 대한 부당성을 나타냄.

인간 본연의 붉은 피에 그르누이릐 순백의 의도가 뒤섞이면 결국 현실은 죄악이 낳은 탁하게 오엽 된 피만 남을 뿐이다. 이 두 피의 교직된 대비는 결코 평행선을 만날 수 없는 이상과 현실, 욕망과 대가, 죽음을 껴입고 덧칠되는 삶의 모순 등을 나타내고자 했다.


3. 작품 / 080407-2 파일

1) 사이즈 / 53.5cm X 75.5cm

2) 파브리아노 종이 위에 아크릴릭, 꼴라주, 연필, 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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