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고 말 하고 싶었다


이별의 기억들로 수없이 덧칠되어진 내 마음의 캔버스는 가을이 오면 더 날깃 날깃 해 진다.

세상을 지탱하는 모든 것 들은 시간이 그어대는 포물선 따라 생성과 소멸의 경로를 빈틈없이 거처 가는 게

섭리임은 이해가 되고, 온갖 인연들로 얽힌 만남의 관계를 키워갈 수록 이별 또한 애드벌룬처럼 부풀어 오르는 것이 순리라는 사실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하지만 그런 인식론은 타인의 이별을 바라볼 때만 성채처럼 견고한 이성이 작용할 뿐, 여전히 소유에 대한 집착과 현상의 유혹에 결박당한 나 자신의 경우에는 속절없이 허물어져 내리는 모래먼지일 따름이다.

이별은 필연적이라 숙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나 작지만 소중하던 일상의 관계들이 끊어지는 순간부터,

아무리 사무치는 기억조차도 잊혀져 간다는 사실은 뿌리치기 어려운 슬픔이다.

나는 늘 내일이어도 괜찮을 거라는 안일한 마음 때문에 정말 하고 싶던 말 한마디 전할 기회를 놓치고 그것을

한탄하고 후회하면서도 습관처럼 과오를 반복하며 살아온 듯하다.

유년시절엔 태산처럼 강해보이던 아버지가 약주 한 잔에 솜털처럼 가볍게 장성한 자식 등에 업혀 나지막하게

콧노래를 부르시던 날 정말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 하고 싶었다.

나는 그렇게 내일 혹은 그 다음날이면 다시 만나서 쑥스럽지만 속마음을 털어놓으면 비 개인 하늘처럼 개운하게 웃음을 나누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이들과 급작스런 이별을 한 기억이 많다.

그리고는 어김없이 그 헤어짐의 문턱에 서서 한번만이라도 사랑한다고 말 했어야 한다는 후회 때문에 더 서러워하곤 했었다.

어디 사람뿐이랴...심지어 창가에 아껴둔 작은 풀꽃 화분이 밤새 몰아친 폭풍우에 사라졌을 때, 주머니 속에서

낡아가던 손수건을 잃었을 때, 빛바랜 사진이나 그림을 태우던 날, 마지막 이삿짐을 들어내며 작업실의 녹슨 키를 돌릴 때, 서랍정리를 하다 발견한 처절했던 첫사랑의 편지지를 꺼내 들 때, 예술과 자아를 찾아 방황하던 날들을 목탄 빛깔로 기록한 먼지 낀 일기장을 들춰볼 때조차도 가슴 밑바닥에 고이는 마지막 앙금은 그 삶의 순간순간 마다 인색했던 말 한마디가 후려치는 둔탁한 아픔이었다.

이제 곧 가을이 밀물처럼 들이닥칠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이별의 불꽃놀이가 온 산천을 뒤흔들겠지...

다시 만날 것을 아는 이별은 애잔하고 아름다우나, 영영 기약 없는 소멸은 영혼까지 상처를 줄 정도로 아픈 법이다.

이번 가을만큼은 나와 너에게, 우리와 세상 모든 것들에게 정말 사랑한다고 말 하고 싶었다고 서둘러 말해야겠다.



이영철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