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의 대화-삶 속에서 만난 얼굴들

 

 모든 인간의 삶은 결국 한 줄 이야기로 남는다. 나는 일상 속에서 만나는 그 소박한 희망의 이야기들을 쉬지 않고 받아 적는다.

 

자주 많은 사람을 그린다. 잊으려 해도 자꾸 생각이 나서 그리고, 기억하려 해도 점점 희미해져서 그린다. 희망의 얼굴, 그리움의 얼굴을 거듭 그린다. 어느 듯 그 작은 하나들이 모이고 쌓여 점점 더 큰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

 

나는 드로잉이라는 방법으로 생활 속에서 만난 평범한 인간들의 열정과 사랑 희망의 에너지가 내재된, 현대인의 다양한 삶의 단면을 기록하는데 관심이 많다. 그래서 대부분의 드로잉 속에는 그때그때 떠오르는 잠언, , 계획, 일기, 인물에 대한 소감 등등을 함께 적어 넣었다.

 

나는 인물을 보고 그리지는 않는다. 직접 보고 현장에서 인물을 그리면 자꾸 그 인물의 현상에 얽매이게 된다. 그러면 선이 자유롭게 그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릴 대상이 정해지면 유심히, 자주 그 인물의 이미지를 들여다보다가. 막상 그릴 때는 마음에 남은 잔상만 순간적으로 그린다. 엄밀히 말하자면 대상을 보고 그리는 것이 아니라 본 것을 그린다.

 

드로잉에 쓰이는 종이는 작업실로 들어오는 편지지, 엽서, 팸플릿 봉투와 내지, 종이가방, 박스 등을 필요한 색상과 형태로 잘라서 재활용하고 있다. 인쇄된 활자나 주소, 직인 등의 흔적도 남겨둔다.

 

드로잉은 주로 볼펜으로 한다. 연필을 선을 결단력 있게 긋는데 적합하지 않다. 그래서 한 번 그으면 지울 수 없는 볼펜을 택했다. 지우기를 포기하면 저절로 결단력이 따라온다. 선묘가 자리를 잡으면, , 압축목탄, 수채, 오일스틱, 유성펜, 크레파스, 콘테 등으로 추가 채색을 하는 경우가 많다.

 

드로잉은 주로 작은 사이즈로 많이 작업을 해서 큰 덩어리로 모아 설치하는 방법을 택했다. 시간과 장소를 구애받지 않고 어디에서나 자유롭게 작업을 할 수 있는 과정상의 이점이 있는데다가, 세상 모든 제일 큰 것들은 가장 작은 것들과 둘이 아니라는 말을 전하는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나의 드로잉을 통한 일상과의 말 걸기는 우리의 삶 속에서 매일 만나는 작고 사소한 모든 것이 결국 가장 크고 소중하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담고 있다.

 

 이영철(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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