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는 내 친구

 


 2월 중순 어느 날, 비가 내렸다. 오랜만에 비를 맞으니 차가운 듯 따뜻하다. 이것이 겨울비와 봄비의 차이인가보다. 그 차이는  마음속으로부터 느끼는 희망, 바램, 기대...등에 대한 부피와 질량이 달라지고, 아무리 추워봐야 이제 조금만 더 견디면 봄이 온다는 그 거역할 수 없는 대자연의 섭리를, 우주의 시간을 거슬러 오르내리면 단 한 번도 변함이 없던 이 확고한 순리를 알고 있기 때문에 생긴 것이겠다.

 

 사람도 겨울비 같은 사람이 있고, 여름과 가을비 그리고 봄비 같은 사람이 있다. 나에게는 고등하교 때부터 만나온 봄비 같은 친구가 있다. 그는 육상 장거리종목 대표선수로, 나는 미술부장으로 우리는 같은 교실 맨 뒷자리 구석에서 운명적으로 만났다. 요즈음의 교실 환경이야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그 때의 뒷자리는 학업과는 다소 거리를 둔 부류의 인재(?)들의 독립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는 또 벽 없는 경계가 있었는데 아직은 인생에 아무런 목적 없는 농땡이들의 영역과, 우리처럼 자신이 가고자 하는 세계가 이미 확고해서 그 속에 빠져 사느라 학문적 열정이 도저히 끼어들 틈이 없는 지역이 그것이다. 우린 바로 그 성적 우등생 출입금지구역에서 만나 금방 친해졌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친구의 이름이 춘우였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예명이 봄비가 되었다. 그 후 이 친구는 한해도 거르지 않고 내 삶은 적셔주는 단비가 되어주었다. 고교시절 내내 친구 집을 뻔질나게 드나들며 쌓은 추억도 헤아리기 힘들다. 동구 밖 느티나무 아래 앉아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별처럼 쏘아 올리던 화가의 꿈과, 마을 뒷산 과수원에 작은 미술관 하나 지어보자던 후원자와의 때 이른 만남은 순수하고 정겹기 그지없었고, 군 입대 후에는 휴가만 되면 집보다 친구를 먼저 찾던 기억, 그리고 결혼 후에도 가족이 더 늘었다는 것 빼고는 전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아내와 내 아이도 나보다 더 멋진 이 친구를 큰아버지라고 자연스럽게 부르며 지냈다. 그러다보니 고교시절 습작부터 최근작 까지 내 그림을 시기별로 다 소장하거 있는 사람도 자연스레 친구 춘우가 유일하다.

올해 신년원단에도 그와 만나 낙동강변을 거닐며 서로 행복한 새해를 기원했다, 어느 듯 우리가 만난 지도 30년이 넘었고 까까머리 고등학생시절 그렇게 까마득하게만 느껴지던 어른이 되고도 한참이 지났다. 그래서 내 인생에 이런 친구가 함께 있다는 것이 새삼 고맙고 행복했다.

 

 지난 구정 전날부터 갑자기 병원신세를 지게 된 친구는 위암 판정을 받고 연이어 수술을 해야 했다. 이 모든 일은 불과 20여일 사이에 마치 꿈꾸듯 진행되었다. 그동안 그 어느 누구보다도 건강했고 자신보다는 늘 남을 위해 먼저 나서던 친구가 환자복을 입고 병원에 있는 모습은 너무 낯설기만 한 풍경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결국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었다. 그런데 또 새로운 일이 생겼다. KBS의 생로병사의 비밀-위암 특집 편에 그의 수술을 집도할 의시선생님의 권유로 촬영과 방영 허가를 의논해왔고 친구는 자신의 불행과 고통이 다른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한 경각심을 주는데 도움이 된다면 그렇게 하겠노라고 허락을 했다. 나는 이런 황망하고 자신의 문제만 해도 너무 벅찬 짐을 갑자기 지게 된 상황에서도 남을 생각하는 일에 관심을 주는 내 친구가 참으로 크게 보였다.

 

그 일로 인해 일정이 갑자기 당겨졌다며 일산 국립 암센터로 수술을 하러 간다는 연락을 받고 나도 황급히 친구를 배웅하러 구미로 달려갔다, 그리고 가는 길에 휴게소에 잠시 들러 친구에게 줄 편지를 썼다. 우리가 처음 만난 아날로그 시절엔 참으로 많은 편지들을 주고  받았는데 시대가 빠르게 바뀌고 전화가 그 영역을 메우면서부터는 기억에도 희미해진 편지를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힘과 용기를 내자고 한 줄 한 줄 적어 내려가노라니 절로 눈물이 났다.

 

 태어난 모든 것은 소멸하기 마련이고, 만난 모든 것과도 결국은 이별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신의 섭리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만큼의 나이는 되었지만 그래도 아직은...아직은 아니라고 간절하게 기원하며, 늘 받기에만 익숙해 있었는데 이제 나도 이 친구에게 든든한 산이 되어주어야겠다고 다짐도 했다. 수술 당일도 곁에 있어주지 못할 만큼 여전히 빠듯한 일상 속에서 시간과 공간 견디기를 하며 친구아내와 통화를 해 매일 근황을 살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고 이제 회복과 재활 등 긴 치료를 일상의 일부분으로 안고 살아야 한다. 그래서 앞으로 살아가야하는 길은 지나온 시간과는 많이 달라질 것이다. 드디어 병문안을 가기 전날 봄의 문턱에서 갑자기 기약 없는 겨울을 맞이한 친구에게 줄 그림 한 점을 밤늦도록 정성스럽게 그리고 그 안에 내 마음을 담은 글을 쓰서 액자에 넣었다.


사랑하는 내 친구여

봄을 몰고 오는 비처럼

늘 너 자신보다 우리를 더

생각해주던 친구여

이제야 이렇게 우리 모두

네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마음 깊이 생각합니다.

어서 이 겨울과 함께

너의 아픔도 다 보내고

따뜻한 봄날과

환한 희망이 언제나

내 친구와 함께하기를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친구야 이제부터는 너 자신의 건강한 인생을 위해서 다시 늠름한 선수가 되어 달려다오. 지난날 비포장 신작로 길을 눈부시게 달려 나가던 너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구나. 인생의 신발 끈을 불끈 다시 조여 매는 너를 위해 그 옛날 그대로 나도 매일 매일 응원할게...!



화가 이영철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