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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봄

  새 봄이 들불처럼 시작되고 있다. 아스라이 변방으로 밀려난 겨울이 머물던 자리에는 어느새 봄의 중심이 들어와 있다. 마음이 먼저 그것을 안다. 얼마 전 생전에 어머니가 다니시던 고향집 근처 작은 절에서 연락이 왔었다. 입춘이 다가오니 이제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해서 법회에 참석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이런 저런 바쁜 핑계를 앞세워 거절하려 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그 긴 세월동안 당신이 해마다 그곳에 가셔서 무엇을 했을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겨우내 비어있었던 고향집도 둘러볼 생각에 시간을 맞춰 들리겠노라고 연락을 했다.

 지난밤 내린 짓 눈께비의 흔적을 고스란히 거느린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 이른 아침에 절을 찾아갔다. 내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는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 하나로 이 절집을 드나드셨다. 왜 그 많은 큰 절을 마다하고 굳이 이 작은 절에 다니느냐고 철없이 물었을 때, ‘얘야...어디든 부처님을 모시는 마음이 중요하지!’ 하시며 조용히 웃던 어머니셨다. 그 후 삼십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 49제와 지난해 당신의 49제도 이곳에서 모셨으니, 우리 가족에게는 분리할 수 없는 인연이 쌓인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실 나는 여행길에, 혹은 초파일에 적지 않은 사찰을 부지런히 드나들었지만, 늘 염불보다는 잿밥에 관심이 많았을 뿐이다. 그래서 두 분의 49제 때 외에는 이 절에서도 법회 한번 제대로 참석한 기억이 없다. 가족의 안위와 연관시킨 부처님을 향한 일편단심 사랑은 오직 어머니의 몫이 전부였다. 어느 해는 나쁜 운이 온다고 하니 마음부터 내려놓으라고, 또 다른 해는 대운이 오니 기쁜 일이 생기더라도 몸을 더욱 낮추라고 하시던 잔소리를 들으며 최소한 40여년 이상을 지내온 듯하다.

  절에 도착하니 계절이 바뀌듯 이곳의 시간도 흘러 큰 스님을 대신해 작은 스님이 절집 살림을 맡아보고 계셨다. 스님은 내 모습만 보고도 어머니가 생전에 스님과 부처님께 그림 그리는 아들 생각을 얼마나 했는지 줄줄이 외우고 계셨다. 그래서인지 스님만 뵈도 어머니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애써 출렁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겨우 법당에 들어섰지만, 그 작은 방 풍경을 보는 순간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법당 안에는 남자는 드물었고, 특히 젊은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신 노인이 된 여인들만 가득했는데. 하나같이 어머니 모습과 너무나 비슷해보였기 때문이다.

   예불이 시작되자마자 자꾸 눈물이 흘러내렸다. 늘 어머니가 이 절을 다니시며 기도를 하고 돌아와 다 괜찮다! 내가 다 부처님께 빌었다...’하시며 살아온 어머니의 세월들이 필름처럼 지나갔다. 비가 오나 눈이오나 심지어 그 긴 투병의 시간까지도 이렇게 이곳에 앉아서 세상근심과 자식걱정을 내려놓을 수 없었던 당신의 마음이 비로소 보였다. 이제 당신이 떠난 자리를 못난 자식이 채우고 앉아보니, 늘 웃음으로 대하시던 그 많은 날들 뒤에 가려져있던 어머니의 고단한 인생이 또렷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끝에는 죄송함과 그리움이 밀물이 되어 넘쳐흘렀다.

  다 지나간 후에야, 영영 멀어진 다음에야 비로소 한 점 초상화로 그려지는 어머니의 사랑이 법당 밖에 하염없이 내리는 봄비에 섞여 흘렀다. 그리움도 미움도 나에게서 나간 것은 이미 내 것이 아니다. 그래서 잊어야 하고, 비워야 한다. 그러나 이미 가버린 것은 종종 이렇게 느닷없이 되돌아온다. 사랑이 특히 그렇다. 아무리 후회스럽고 아픈 일이라 해도 되돌아 내게로 온 것은 다시 내 것이니, 언젠가 또 나와 이별할 때 까지 최선을 다해서 마음으로 받아야 한다. 한 번 지나온 곳으로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다. 그곳은 신의 영역이다. 그래서 더 애잔하고 그립다. 그러나 되돌아볼 수는 있다. 그곳은 우리들 마음의 영역이기 때문에 아무리 먼 기억 속이라 해도 원하면 단숨에 달려갈 수 있다. 그래서 좋은 것은 추억하고 나빴던 것은 반복하지 않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살아보니 어머니의 마음이 내게로 들어와 가끔 희망마저 지쳤다고 짐을 꾸리더라도 용기까지 배낭에 담아 보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신다. 희망이란 친구는 자주 나를 실망시키고, 심지어 속이기까지 한다. 그리고 그럴 때일수록 용기는 그 무거워진 짐을 기꺼이 지고 나르는 힘이라는 것도 깨닫게 하신다. 이제 기어이 봄은 왔다. 얼어붙은 마음, 서운하고 상처받은 마음을 따뜻하게 녹이는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사랑의 싹을 틔우고 꽃이 피기까지는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하다.

  봄은 어머니의 바느질솜씨처럼 아주 평범하고 소박한 것들을 어느 한 순간에 가장 위대하고 아름답게 만든다, 어머니는 인생이라는 그림은 서둘러 내보이려 하지 말고, 그저 마음이 시키는 대로 천천히 눈에 띄지 않게 그려나가야 가장 아름답다는 가르침을 주셨다. 새로운 모든 것이 시작 될 때는 아픔과 혼란이 어김없이 따라다닌다. 그 매운 대가를 치러야 밝고 찬란한 시간도 온다. 아마 올 봄도 어김없이 한평생 자식 걱정에 잠 못 이루시던 어머니 꿈을 꾸느라 하염없이 꽃비에 젖어 보낼 것 같다.

 

 이영철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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