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샤 튜더

| my story 2008.03.21 13:09
 

타샤 튜더



탸샤 튜더는 1915년 보스턴에서 태어나 9세에 부모가 이혼하자 친지 집에서 자라다 15세에 학교를 중단하고 홀로서기를 했는데, 그녀는 어릴 적부터 자신이 어떻게 살고 싶어 하는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고 한다.

외진 농가에서 정원을 가꾸고 애완동물을 보살피며, 가축을 기르고 동화책을 엮고 삽화를 그리고 싶었던 것이다.

23세 때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에서 첫 그림책 <호박 달빛>을 낸 후 결혼을 하고, 30세에 뉴 햄프셔 웹스터 시골에 정착해 수도와 전기도 없는 곳에서 막내가 다섯 살이 될 때 까지 네 아이를 키워내며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녀의 그림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비밀은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감동을 생생하게 옮겨내는 능력 때문이었다.

물론 집안일과 소젖을 짜고 닭과 양, 돼지를 치며 채소밭과 꽃밭을 가꾸는 일도 그녀의 몫이었다. 하지만 남편과 삶을 추구하는 방식이 너무 달랐던 관계로 이혼을 하는 아픔도 겪었다.

1971년 출간한 <코기빌 페어>가 대성공을 거둔 후  마침내 56세에 버몬트 주 코네티컷 강 건너 버려진 땅을 구입해 장남의 도움으로 18세기 풍 농가를 지어 완전히 정착한 후  돌능금, 배나무, 사과나무와 온갖 식물들을 심고 가꾸어 천국의 정원으로 만들었다. 올해로 92세 할머니가 된 타샤는 70년간 20여 편의 동화를 쓰고 100권이 넘는 책에 그림을 그려 세계적인 관심과 명성을 얻었다. 타샤의 정원은 하버드에서 미술과 미술사를 전공한 리처드 브라운의 마치 그림 같은 사진들과 함께 올 가을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모두가 앞날에만 열중하기에도 벅차 넋이 나갈 지경인 세상 속에서 오로지 과거의 삶의 방식만을 쫒아 느림의 미학을 일평생 실천한 그녀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미래지향적인 삶의 대안을 우리에게 선물하며 일과 자신의 꿈 모두에서 성공한 아름다운 사람으로 세간의 부러움과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아마 대다수 화가들이 타샤 튜더처럼 전원 속에 둥지를 틀고 작업을 하고 싶어 할 것이다. 물론 나도 비슷한 꿈을 가지고 있다. 작업방식이 자연주의를 비켜선 지는 오래전이지만, 바람결 따라 풀잎 눕는 소리나, 콩새 한 마리 떠들면 온 대지가 일어서는 광경은 여전히 강렬한 영감의 발원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원생활 속 자급자족에 필요한 공구, 작업도구와 재료들을 수집하며 결행의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타샤에 앞서 스콧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 부부의 삶의 방식을 오래전부터 흠모했었다.

물론 경제학을 전공하고 자본의 분배문제와 반전이론으로 사회로부터 소외되어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적인 생활을 하다 겨울이 되어 농장이 얼어붙으면 여행과 강연, 그리고 저술활동으로 살았던 그들을 내가 결코 낭만이나 감상주의의 지점에서 바라본 것은 아니다.

세상으로부터 스스로 잊혀지고, 뜨는 해와 함께 일어나 식물과 가축을 돌보며 아무도 관심을 기울여주지도 않는 작업을 끊임없이 해 나간다는 것은 죽을 각오를 하고 달려들어야만 가능성이 있는 일일 것이다. 어떤 시기는 거의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무엇을 하든 말든 간섭하는 사람조차 없다는 것을 깨닫고도 규칙적으로 일어나 노동과 작업을 하고, 자기 몸까지 돌보기는 아주 기본적인 일조차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느림은 현대인들이 반드시 고려해야할 덕목이지만 그것이 게으름과 손을 잡으면 자기 자신을 송두리째 망치기 일쑤이지 않던가!

타샤 튜더의 삶은 자연에 순응 하는 겸손함과 노동에 대한 뿌리 깊은 즐거움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전원속의 삶이라 해서 절대로 인생도 꿈도 그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이영철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