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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詩·그림을 만나다] 태극기 휘날리며

매일신문 6월 7일 (토)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전쟁은 위대한 서사시와 위대한 영웅을 낳는다. 그러나 결국에 남는 것은 눈물과 피와 고통이다. 전쟁에서 몸 한 조각을 잃은 이들과 피붙이를 잃은 이들만이 죽을 때까지 치유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빛바랜 깃발만이 찢긴 채 기억의 한쪽을 차지할 뿐이다.

추억의 드라마 ‘전우’를 기억하는가.

1970년대 말에서 1984년경 종영된 국책성 드라마다. 6·25 전쟁을 배경으로 인민군과 싸우는 국군의 용감성과 조국애 전우애를 미화한 드라마다. 아이들은 인민군들의 비열함과 야비함에도 들국화 같은 전우애를 지키는 국군의 의연한 모습에 절로 숙연해지며, 온몸을 바쳐 조국을 수호해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작고한 탤런트 라시찬씨가 소대장으로 나와 피를 흘리며 숨져간 부하를 끌어안고 오열하는 대목은 절로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6·25는 이른바 국책영화의 대표 장르였다.

임권택 감독의 ‘증언’을 비롯해 ‘들국화는 피었는가’ ‘낙동강은 흐르는가’ 등 전쟁 속에 핀 휴머니즘이란 이름을 걸고 국민들을 영화라는 이름으로 훈화했다.

이들 영화에서 전쟁의 아픔은 없었다. 적군을 물리치는 아군의 결연함만이 출렁거렸다. 조국을 위한 아낌없는 희생만이 강요됐다.

이들 국책영화와 달리 상업적 자본과 상업적 모티브로 만들어진 ‘태극기 휘날리며’는 이들 영화와는 달리 6·25 전쟁 속에 희생된 형제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유 없는 싸움이 없듯이 전쟁은 수많은 이유가 있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라는 거창한 이데올로기가 주범이겠지만, ‘태극기 휘날리며’의 형제는 서로를 지키기 위한 전쟁을 벌인다.

가족의 유일한 희망인 동생을 지키기 위해 형은 전쟁의 한복판에 선다. 애국 이념도 민주 사상도 없이 오직, 동생의 생존을 위한다는 이유 하나로 전쟁영웅이 되어간다. 그러면서 자신은 서서히 전쟁의 병기, 야수가 되어간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고무받아 전쟁장면을 화려한 특수효과로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다. 팔다리가 찢기고, 총탄이 가슴팍에 박히고, 포탄에 온몸이 찢기는 장면을 생생하게 구현했다.


화가 이영철은 영화의 대표적인 이미지인 태극기를 그렸다. 영화의 참혹한 장면들을 콜라주하고 모서리에 건곤감리의 궤를 그려 넣었다. 바탕에는 영화 속 장면을 반전과 대비, 역전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재편집해 역사 속에 희생된 이들의 무고함을 표현하고 있다.

중앙의 태극문양은 철조망으로 갈라놓았다. 남북 분단의 이미지와 다가설 수 없는 극단을 날카로운 철조망으로 이미지화한 것이다.


시인 박미영은 평화로운 가족의 일상을 그리면서 전쟁의 광포함을 우회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강아지가 컹컹 짓고, 굴뚝에는 국수 삶는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단란한 가족의 모습이다. 풀 한 포기 없는 민둥산에 포효하는 야수가 되어 흔드는 깃발보다 금방 건진 국수와 완성하지 못한 한 켤레 구두가 이들의 휘날리는 깃발이었으면 좋을 것이라는 간절한 소망을 시에 담고 있다.

뜨거운 여름 저녁 가족들이 모여 달콤하게 먹던 수박 속이 벌겋게 터지는 죽음의 질주로 그려낸 것이 인상적이다.


전쟁은 상실의 욕망이다. 왜 그렇게 싸웠는지에 대한 이유는 종전과 함께 상실된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형제에게는 드라마 ‘전우’의 공허한 이념이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가족을 지키는 것, 그것은 그 어떤 전쟁의 쇠뭉치보다 강건한 것이다. 가벼운 씨앗이지만, 새롭게 움터 수천년을 이어갈 깃발이기 때문이다.


▨ 태극기 휘날리며(2003년)

감독:강제규 / 출연:장동건, 원빈, 이은주 / 러닝타임:145분


1950년 6월. 서울 종로거리에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진태(장동건)는 힘든 생활 속에도 약혼녀 영신(이은주)과의 결혼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동생 진석(원빈)의 대학진학을 희망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나면서 남쪽으로 피란을 결정한 진태는 영신과 가족들을 데리고 수많은 피란행렬에 동참하지만, 피란열차를 타기 위해 도착한 대구역에서 거대한 운명의 소용돌이에 말려들고 만다. 만 18세로 징집 대상이었던 진석은 군인들에 의해 강제로 군용열차로 오르게 되고 진석을 되찾아오기 위해 열차에 뛰어오른 진태 또한 징집이 되어 군용열차에 몸을 싣게 된다.


이영철 / 태극기 휘날리며 작업 텍스트

파일 / 080525-03

작품명제 / 형제의 땅

작품규격 /  53 X 75.5cm

재료기법 / 디지털 프린팅

작품설명 /

영화의 이미지와 스토리를 단 한 컷의 화면에 강렬하게 담아낸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나의 영화보기 작업은 기억에 남는 텍스트나 이미지조각들을 조합하고, 거기에다 드리핑이나 페인팅 등 적절한 화화적 장치를 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었지요. 결국 출발부터 화가는 당연히 그림이란 기대를 하던 사람들의 바램과도 거리가 있었던 듯합니다.

이번 작업도 역시 대작을 보고 느낄 수밖에 없는 감정의 범람을 과연 어느 지점에서 통제하고 막아내느냐 하는 문제로 고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말은 많으면 안 된다는 문인수 선생님의 의견에도 전적으로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나 또한 여러 번 보았지만 구체적인 이미지를 강화하면 영화 포스터 같아지고, 약화시키면 재미는 있는데 어려워지니 더 그랬습니다.

이데올로기가 낳은 분단의 비극, 그리고 본인들의 의지나 희망과는 전혀 무관하게 거대한 역사의 격랑 속으로 휩쓸려 들어간 사람들... 사랑하는 가족과 느닷없이 이별하고, 형제를 지켜내려는 몸부림, 그렇게 굴절되고 왜곡되다 죽어가는 주인공의 초상은 이데올로기가 낳은 한 가족의 비극이 곧 민족 전체의 그것에 닿아있음을 말해주자 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도 사실감 넘치는 현란한 촬영 테크닉과 편집기술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 <밴드 오브 브라더스>, <집결호>와 마찬가지로 영화이면에 깔린 깊고 무거운 의도보다는 표면을 자극하는 화려한 볼거리로 우리를 떠내려가게 하지 않나 하는 개인적인 아쉬움도 남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굳이 주석을 달지 않더라도 화면에 보이는 그대로 이해가 되거나, 최소한 짐작은 할 수 있는 지점에서 작업을 했습니다. 철조망으로 규정되는 분단의 문제, 그리고 그 철조망을 따라 태극문양이 들어가고, 그 태극문양을 다시 반전시켜 흐린 이미지로 바탕에 한 번 더 배치함으로써  영원히 화해될 수 없는 두 체제의 갈등을 나타내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태극 문양의 바탕에는 남북의 무고한 사람들이 흘린 피의 이미지를 아크릴, 먹 등으로 직접 그린 다음, 영화에 나오는 중요한 장면들은 따로 사진파일을 모아 반전, 대비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재편집한 후 그린 이미지와 사진파일을 다시 새로운 화면으로 옮겨 재구성해 최종적으로 디지털 프린팅 파일로 완성작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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