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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詩·그림을 만나다] 타이타닉(1997)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2008년 10월 4일(토) 매일신문


*기사안내

죽음의 그림자에서 늘 운명적 사랑이 잉태된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짧은 순간의 사랑이 영원성을 얻는 것, 죽음이 가장 극적일 것이다. 10대의 풋사랑인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 위대한 것도 죽음보다 강한 사랑의 힘 때문이 아닐까.


타이타닉호.

신화 속 거인족의 이름을 딴 이 배는 인류교만의 대명사로 회자되고 있다. 어떤 태풍도 침몰시킬 수 없는 ‘최강의 배’라라고 자만하면서 최고 속력을 내다가 빙산과 충돌해 승객 2천223명 중 1천517명이 바다에 빠져 얼어 죽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배였다. 길이(268m)는 당시 세상에서 가장 높은 빌딩보다 길었고, 엔진도  4층짜리 빌딩과 맞먹었다. 거기에 실내는 호화로움의 극치를 달렸다. 그러나 가장 안전하다는 이 배는 출항 3일 만에 최후를 맞았다. 마치 신의 경지에 오르려던 바벨탑과 비슷한 말로였다. 그러나 죽음의 배, 타이타닉은 가슴 뭉클한 휴머니즘의 보여주기도 했다. 아이와 여자들을 살리기 위해 희생한 신사들이 있었고, 최후까지 뱃전에서 연주를 하다 죽어간 숭고한 악단도 있었다.

‘터미네이터’ ‘에이리언2’ ‘어비스’ 등 대작영화를 즐겨 만들어온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주목한 것은 죽음 앞에 핀 애틋한 러브스토리다. 로즈(케이트 윈슬렛)와 잭(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은 타이타닉이 아니었으면 만날 수조차 없는 신분의 벽을 가지고 있었다. ‘한 배를 탔기에’ 만남이 이뤄지고, 특등실과 3등실의 차이를 뛰어넘을 수 있었다. 눈 속에 핀 꽃처럼 하얀 얼음조각을 머리에 쓴 잭이 차가운 심해 속으로 빨려 들어갈 때 애절함은 운명적 사랑의 원형이었다.


시인 이규리는 “사랑이라는 이름, 숨 막혀요”라고 했다. 가슴에 꽉 들어차 숨 쉴 여유조차 없는 사랑. 어떤 구속도, 어떤 신분의 벽도 없이, 날 숨조차 얼어붙는 극지의 한계에서도 가슴을 덥여주는 사랑의 힘을 그는 ‘숨 막히는 이름’으로 표현했다.

시는 침몰의 이유가 빙산이란 암초가 아니라 이미 술잔처럼 부서지기 쉬운 교만과 자만으로 풍자하고 있다. ‘파란 바닷물이 그만 손아귀의 힘을 풀었던’ 것도 그들이 ‘한 번도 기울어져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기울지 않았던 로즈와 잭, 잭이 그녀의 손을 놓아버린 것은 카프카의 말처럼 ‘절망이 기어오르는 발판을 없애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화가 이영철은 작품 제목을 ‘진혼곡-니므롯의 종이배’로 달았다. 니므롯은 신에 대항해 바벨탑을 쌓았던 고대 바빌로니아의 왕이다.

“인간이 아무리 거대하고 완벽한 타이탄족과 비견되는 철갑선을 만들었다 해도 신과 시간 그리고 자연의 힘을 간과한다면 억울한 희생만 불러오는 작고 보잘 것 없는 종이배와 다름없다는 뜻”이라고 했다.

캔버스를 작게 분리하고 반복적으로 흰 여백을 준 것은 수많은 희생자와 가족들의 삶과 죽음을 동시에 담아낸 십자가들을 의미한다.

별리(別離)의 회오리 속으로 추락하는 주인공, 짧고 뜨겁게 타오르다 꺼지는 슬픈 두 연인의 사랑과 눈물, 북해의 차가운 바다 속에서의 마지막 호흡을 사랑하는 가족을 그리워하며 바쳤을 수많은 사람들, 삶을 향한 숨 가쁜 탈출 동선, 자연과 신 앞에서는 종이배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인간문명에 대한 경고등을 작품 속에 담았다.

헬레니즘 미술의 최고봉인 ‘사모트라케의 니케상’을 패러디해 마치 이 영화의 상표처럼 되어버린 두 연인의 유명한 선상 장면과, 사랑의 징표처럼 간직한 푸른 다이아몬드 등 영화의 사진들을 그 사이에 넣었다.


위태로운 종이배 위에서 잭은 로즈의 손을 잡으며 말한다. 비록 배는 침몰했지만, 사랑만은 침몰하지 않고 영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이 짧은 한 마디에서 시작했다. '나를 믿어요!'(Trust me!)



* 이영철의 작품 / 진혼곡-니므롯의 종이배 설명

서양 문명의 양대 기둥은 신을 닮은 인간을 창조했느냐 아니면 인간을 닮은 신을 창조했느냐에 따라서 신본주의인 헤브라이즘과 인본주의인 헬레니즘으로 나뉘는데  이 영화는 인본주의의 정점인 그리스인들의 정신 즉 헬레니즘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헬레니즘 미술의 최고봉인 <사모트라케의 니케상>을 패러디해 마치 이 영화의 상표처럼 되어버린 두 연인의 유명한 선상 씬이나  거인족 티탄에서 가져온 배의 이름, 그리고 침몰한 배의 보물인양에 모든 것을 걸다 마침내 그 비극적인 배에 타고 있었던 사람들을 간과했노라고 극중 탐사선장을 뉘우치게 만드는 연출자의 의도에서도 인간에 대한 사랑을 중심에 둔 징후는 너무나 선명 합니다.

그렇게 인간은 크고, 높게, 강함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절대로, 결코 라는 수식어로 장담을 하며 신의 영역으로 도전을 해왔습니다.

이 타이타닉호의 비극을 떠올릴 때 마다  하느님의 절대권능에 대항해 바벨탑을 쌓으며 인간이 더 이상 신에게 빌거나 두려움에 떨고만 있지 않고, 스스로 토목, 건축, 과학, 교육 등을 발전시켜 인간을 최초로 문명세계로 인도해 나간 인본주의의 창시자 고대 바벨로니아인 니므롯이 생각납니다.

하늘에 도전해 거탑을 쌓던 일이 결국 좌절되고만 교훈을 망각한 바벨론의 후예들은 오늘날까지 오만과 편견이 개입된 문명의 부침을 거듭하고 있는데도 우리는 갈수록 그 반복되는 역사적 교훈을 가볍게 여기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붕괴의 아픔을 포함해 우리들에게도 결국 인간은 인간이기에 필연적으로 늘 빈틈을 껴안고 산다는 사실을 너무 가볍게 취급한 대가를 가혹하게 치른 사례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래서 인간이 아무리 거대하고 완벽한 타이탄족과 비견되는 철갑선을 만들었다 해도 신과 시간 그리고 자연의 힘을 간과한다면 억울한 희생만 불러오게 될 작고 보잘 것 없는 종이배와 다를 바 없다는 의미로 작품제목을 <진혼곡-니므롯의 종이배>로 정해보았습니다.  인간은 그저 서로 사랑하고 위로하며 자신들의 몫으로 배당된 우주의 시간 한 지점을 잠시 여행할 뿐인데도 우리는 자연 속에 있는 신의 존재조차 잊고 사는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작업을 작게 분리하고 반복적으로 흰 여백을 준 것은 수많은 희생자와 가족들의 삶과 죽음을 동시에 담아낸 십자가들을 의미합니다.

별리의 회오리 속으로 추락하는 주인공, 짧고 뜨겁게 타오르다 꺼지는 슬픈 두 연인의 사랑과 눈물, 북해의 차가운 바다 속에서의 마지막 호흡을 사랑하는 가족을 그리워하며 바쳤을 수많은 사람들, 삶을 향한 숨 가쁜 탈출 동선, 자연과 신 앞에서는 종이배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인간문명에 대한 경고등을 담고자 했습니다. 나를 포함한 인간이 있기에 세상도 있는 것이고 우리는 간혹 인간을 더 행복하게 잘 살게 하겠다고 서두르다  오히려 사랑하는 모든 것을 일순간에 잃고야 마는 일은 더 이상 반복되지는 않아야 하니까요.

작업은 이미지를 철필로 긁고 아크릴페인팅으로 작업해 파일을 만든 후 그 위에 영화 속 주인공을 포함한 등장인물들을  재배치해 최종 디지털 프린팅 파일로 만들었습니다.


* 영화소개

▨ 타이타닉(Titanic, 1997)

감독:제임스 카메론

출연: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케이트 윈슬렛

러닝타임:195분


1912년 4월. 금세기 최고의 유람선 타이타닉호가 처녀 출항한다. 17세 소녀 로즈(케이트 윈슬렛)는 귀족 집안의 망나니(빌리 제인)와 결혼을 앞두고 이 배에 승선한다. 배가 출발하기 전 도박으로 겨우 3등석 좌석을 얻은 잭(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배에 오른다. 상류사회에 숨 막힌 로즈가 자살하려는 순간, 잭이 나타나 설득하면서 둘의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된다. 신분을 뛰어 넘는 사랑은 그러나 타이타닉호가 빙산과 충돌하면서 위기를 맞게 되는데......

그렇게 북해의 어둠 속으로 묻혀버린 사실 하나가 1990년대에 이르러 과학자들이 첨단장비를 동원하여 침몰한 타이타닉 호 안에 있을 보물을 찾기 위해 탐사를 벌이게 되면서 다시 세상 속으로 알려지게 된다. 그들은 탐사 중에 이상한 궤짝 하나를 발견하고, 큰 기대에 부풀어 열어보지만 그 곳에서 단지 한 여인의 나체화 그림만을 발견하고 크게 실망한다. 하지만 그림 속 여인의 목에는 그토록 탐사 팀이 찾던 어마어마하게 큰 보석 목걸이가 걸려있었다! TV에서 이 기사를 접한 어느 늙은 할머니가 그림 속의 여자가 바로 자신이라며 직접 탐사선으로 오게 된다. 그림 속 보석 목걸이에 관심을 가진 탐사 팀에게 들려주는 할머니의 이야기 속으로 관객들도 함께 빠져들게 된다.


70여년 전, 당시 열일곱 살이던 로즈(Rose DeWitt Bukater: 케이트 윈슬렛 분)는, 사교계에 오르는 계단으로 딸을 이용하려던 야심찬 어머니(Ruth DeWitt Bukater: 프랜시스 피셔 분)의 강요로 귀족 집안의 망나니 아들(빌리 제인 분)과 결혼을 앞두고 타이타닉에 승선한다. 한편, 배가 출발하기 바로 전 도박으로 3등석 자리표를 얻은 청년 잭(Jack Dawson: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도 친구와 함께 3등석에 승선한다. 출항한지 얼마 후 엄격한 규율과 예절을 요구하는 상류 사회에 회의를 느끼던 로즈는 결혼에 따른 자신의 장래를 비관하며 선미에 올라가 자살을 시도 한다. 하지만 우연히 이를 본 잭이 로즈를 극적으로 구출하게 되어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된다. 이 일로 잭은 로즈의 초대를 받아 상류층 사회의 저녁 식사에 초대된다. 하지만 잭은 가식적인 귀족들의 어색한 식사를 재치로 넘기고, 로즈를 3등석의 파티장에 데려가 마음껏 춤추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림을 그리는 잭의 자유로운 영혼에 그만 사랑에 빠진 로즈. 잭은 로즈의 제안으로 결혼 예물로 받을 다이아몬드 목걸이만을 목에 건 누드화를 그려주게 되고, 두 사람은 운명적인 사랑의 열정 속으로 빠져든다.


 하지만 로즈의 약혼자인 막대한 유산의 상속자이자 칼 헉슬리(Cal Hockley: 빌리 제인 분)이 두 사람의 사랑을 질투하여 잭을 보석 목걸이를 훔쳤다고 누명을 씌어 잭을 감금한다. 어느덧 운명의 시간, 빙산에 충돌한 타이타닉호는 몇 시간 후 마침내 최후의 시간을 맞이한다. 1등석 사람들은 대부분 구명보트에 오르지만, 3등석의 승객들은 혼란을 막는다는 구실로 출구마저 통제 당한다. 감금된 잭의 방에 물이 차오르고, 로즈는 구명보트의 승선을 앞두고 잭을 구하러 달려간다. 결국 아슬아슬하게 잭은 구출되지만 배는 가라앉기 시작한다. 아수라장 속에서 끝까지 키를 잡고 배와 함께 죽음을 맞이하는 선장과, 그대로 침대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어느 노부부. 또 배의 밴드 연주자들 또한 끝까지 연주를 계속한다. 시간이 흘러 물이 먼저 배 앞부분에 차서 배가 기울어지면서 뒷부분이 하늘로 치켜 올라가게 된다. 이어서 마침내 타이타닉호는 두 동강이 나면서 뒷부분이 바다 속으로 침몰한다.


 잭과 로즈는 배 맨 끝에서 서로를 의지하면서 마지막까지 매달리다 바닷 속으로 떨어진다. 잭은 물 위에 뜬 배의 부유물 조각을 찾아내 로즈를 올려주고는 삶을 포기하지 않을 것을 부탁한다. 구출대가 나타나지만 구명보트에 오르지 못한 수 천 명이 그대로 얼어 죽고, 잭 역시 숨을 거둔다. 구출대가 나타나지만, 기력을 잃어 소리도 내지 못하는 로즈. 하지만 잭의 마지막 말에 용기를 얻은 그녀는 근처 시체에서 휘슬을 꺼내 있는 힘을 다해 분다. 마침내 로즈는 구출되고 자신을 찾는 비열한 칼에게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리고 잭의 유언대로 평생을 자신이 원하는 보람 있는 삶을 살게 된다. 눈물을 글썽이며 이야기를 마치는 로즈 할머니 곁에서 많은 이들이 감동을 얻는다. 탐사선의 선장은 그동안 그토록 보물을 찾아다니느라, 그 배 안에는 보물보다 더 고귀한 사람들의 사랑과 이별이 가득 실려 있었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깊이 뉘우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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