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으로부터 열리는 문
어느 유명한 화가가 전시회에 멋진 풍경화 한 점을 발표했다.
마침 전시장을 찾은 평론가 친구가 그 그림을 유심히 들여다보다가 아주 중대한 오류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이보게 자네 엉터리 그림을 그렸구먼, 이 멋진 정원과 훌륭하게 어울리는 집은 괜찮은 솜씨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 분명하군. 보게! 이 집 현관문에는 손잡이가 없지 않은가?>
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문제의 그림 앞으로 몰려왔고, 화가는 아주 난처한 입장에 처해지는 듯 했다.
그러자 화가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자네가 틀렸네, 이 집은 바로 우리 자신의 상징이지. 그리고 이 문은 밖에서 열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열고 나오는 문이라네.>
현대미술에 있어서도 이 작은 일화가 말하는 바는 매우 크다.
요즈음은 많은 사람들이 기를 쓰며 어디든 열고 들어가기에 급급할 뿐, 먼저 스스로 내 안의 문을 열고 나오려 하자 않는다.
그렇지만 문은 언제나 기다렸다는 듯 열려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오로지 원하는 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몸부림치며 술을 마시고 싸우거나 신의를 저버리고 이웃과 멀어지기도 한다.
심지어 그저 삶이 이끄는 대로 죽는 날 까지 남의 집 문고리만 쥐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 한 점의 그림 이야기는 우리가 세상살이의 중심에서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화처럼 살아가는 길을 분명히 제시해 주고 있다.
이처럼 미술 속에도 인생을 읽을 수 있는 수많은 길들이 숨어있다.
그리고 그 길은 문화의식에 눈 뜬 사람과 미술품에 대한 정신적 의미를 찾으려는 사람들 쪽으로만 활짝 열려있다.
이영철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