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이영철 일하는 멋 | 2012년 3~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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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를 만나다
그린 꽃은 시들지 않는다
보랏빛 꿈을 꾸게 하는 화가 이영철
다만 그림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붓을 들었습니다. 그림을 그리면 행복 할 것 같아서입니다. 화가는 시들지 않은 꽃을 그려놓고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보랏빛 꿈을 꿉니다.
글 사진 일멋
림에세이집 <그린 꽃은 시들지 않는다>에서 발췌
1. 작업실
대구 중구에 있는 남문 시장은 오래된 재래시장이다. 그곳에 허름하고 낡은 상가가 있다. 곧 재개발이 될 것이라는 소리는 벌써 수 해를 넘겼다. 화가를 만나러 남문시장3지구 215호로 올라가는 계단과 통로는 쾨쾨했다. 215호 문이 열리자 봄이다. 새빨간 티셔츠를 입고 단발의 바가지머리를 한 화가의 수줍은 웃음도 설레는 봄이었다. 미완의 작업들이 물감 냄새를 토해낸다. 작업실 벽면 책장이 인상 깊다. 천장에 닿을 듯 한 커다란 책장에는 미학과 문학이, 음악이 어울려 빼곡히 꽂혀있다. 먹으로 그린 인물 드로잉 작품들과 연필 스케치가 군데군데 붙어있다. 책상위에도 바닥에도 작업의 흔적이 많다. 화가의 부지런함이 보인다.
지천명을 넘긴 나이라고는 도저히 상상이 안되는 화가의 수줍은 웃음소리를 들으며 두 시간 여 동안 화실에 피어있는 봄을 즐겼다. 봄 선물도 받았다. 자신의 그림과 글이 담긴 <그린 꽃은 시들지 않는다> 에세이 집이다. 215호 문을 나서며 에세이집에서 발견한 문구 한줄 읽는다.
『올라가는 길이 고단하면 내려오는 길이 더 아름답겠지요.』쾨쾨한 상가 건물에 봄 향기가 가득 찬다.
2. 고향
『무엇을 그릴지 자꾸 생각이 납니까?
무엇을 그릴지 자꾸 생각이 납니다.
내 마음속에도 무언가 창문 같은 것이 생겼는데
열심히 들여다보면 무언가 보입니다.
나는 그것을 털어내고 닦아서
선명한 이미지로 만들지요.
그것이 내 그림이 됩니다.』
화가의 고향. 김천시 봉산면 신암1리. 추풍령과 황악산 사이로 내려앉은 야산과 실개천을 끼고 있는 전형적인 시골마을이다. 다랑이식 논농사와 밀, 보리, 조, 수수 등 밭농사가 전부였던 빈곤한 산골. 비포장 길을 털털거리며 달리던 시외버스는 하루에도 손꼽을 정도였고,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인 70년대 중반에 전기가 들어왔던 첩첩산중 오지마을. 하지만 묘하게도 그 시절의 지독했던 가난과 열악한 환경들이 화가에겐 평생 동안 퍼 올릴 수 있는 마르지 않는 창작의 샘이 되어주었다. 먼지 뿌연 비포장 신작로를 따라 끝없이 서 있던 미루나무, 한여름 밤하늘, 손에 잡힐 듯 내려온 별꽃을 그을리던 모깃불, 봄비 내리는 들판을 맨발로 뛰어다니며 만난 젖은 풀잎의 촉감, 실개천에서 함께 헤엄치던 수많은 민물고기들… 집 뒤란에 지붕을 덮다시피 하고 서있는 아주 큰 살구나무. 봄이 되면 온 집안과 밖이 꽃 천지다. 화가의 형제들이 날마다 살구나무에 올라가 꽃가지를 흔들며 꽃비를 내렸다. 추억의 창문을 열면 고향이 보인다. 희미해져가는 추억이 하나둘 살아난다. 따뜻해져온다. 캔버스가 따뜻한 옷을 입는다. 캔버스가 화사하게 웃는다. 소녀도 웃고 꽃도 새도 웃는다. 자연과 교감했던 소년은 중년이 되어서도 빨갛고 노란 연애를 하고 있는 중이다.
3. 나의 길
『키 작은 산들과
키 큰 나무들의 세상 속에서
나는 정해진 길을 가고 있습니다.』
유년시절 형의 교과서에 실린 투명하고 맑은 수채화 삽화 한 점이 화가 이영철로 살게 했다. 삽화가 좋아서 학교에 빨리 들어가게 해달라고 졸랐다. 부모님은 공부하고 싶어 죽겠다는 기특한 자식으로 여겼다. 소년은 다만 그림이 그리고 싶어서였다. 학교에 들어갔다. 단짝 친구 녀석의 책과 공책에는 공부한 흔적이 가득했고 화가의 것에는 온통 그림이다. “요놈들 커서 뭐가 돼도 되겠다.” 선생님의 말씀처럼 친구는 법학을 화가는 스물다섯에 붓을 들었다. 정해진 길을 가는 데 시간이 걸렸다. 아버지의 반대로 가출도 방황도 했다. 짐을 꾸릴 때마다 어머니의 음성을 듣는다.
『애야. 멀리 가지마라. 길을 잃을 거야.』
그림쟁이는 죽어도 안된다는 아버지는 끝내 자식의 길을 인정하지 않으신 채 말없이 하늘로 가셨다. 대학 시험을 치르던 바로 그날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밤, 깜깜한 어둠 속에 유일한 빛 하나. 아버지가 화가에게 남긴 마지막 빛이다. 아픔과 슬픔으로 다가온 빛은 화가를 어둡고 우울한 곳으로 숨어버리게 만들었다. 화가의 초기 작품은 인간의 존재 생성과 소멸, 무겁고 고단한 삶이 연속되었다.
4. 희망을 그리다
『어느 날 내가 맹목적으로 모으고 쌓아둔
빈 물감 상자 더미가 내 정신의 한 구석을 찌르듯 들어왔다.
가볍고 간단한 도구와 함께 이동 작업이 가능한 종이 상자는
갑자기 나를 들뜨게 했다.』
캔버스에서 어둔 빛을 몰아내고 밝은 빛을 앉혔다. 침묵보다는 통통 튀는 맑은 소리를 입혔다. 그랬더니 예쁜 봄이 제일 먼저 와서 희망을 노래했다. 봄날의 들판을 보면 그 자체로 너무 좋은 게 바로 화가 자신이었다. 여름날 초록나무가 눈을 크게 뜨고 시원한 바람을 만났다. 한 겨울에도 보라색 창문이 열렸다. 세상을 밝게 보았다. 누구에게나 순수의 시절이 있었던 그림, 추억이 있고 스토리가 있는 그림을 그렸다. 한 달 넘게 떠난 유럽 미술 기행에서 “모든 화가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회화의 역사를 써내려간다”는 어느 유명한 철학자의 말처럼 그림, 예술이라는 것은 결국 공통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화가는 멀고 크고 추상적인 관념의 세상에서 작고 사소하지만 인간에게 웃음과 희망을 주는 그림을 그리며 세상에서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것들을 서정적인 시선과 감수성으로 이야기를 만들었다. 생활하며 보고 듣고 읽고 여행하며 느끼는 것들을 메모한 작은 수첩이 그림의 소재가 된다. 때 묻지 않은 동심과 목가적인 시골 전원 풍경, 소시민들의 이야기, 삶에 대한 긍정, 희망에 관한 작은 이야기들을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으로 화폭에 풀어놓았다. 화가는 말한다. “나의 그림은 그동안 하나둘씩 사라져가고 이별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을 되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커졌습니다. 사랑, 우정, 꿈, 느림, 여유, 웃음, 열정들을 그림을 통해 환기시키고 되찾고자 하는 데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라져가는 것은 비단 자연 뿐 만이 아니라 그것을 보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인간의 순수한 마음도 포함되겠지요. 그러한 것들을 다시 그림으로 회복하고 싶었고 더불어 그림을 그림으로써 자연을 닮아가고 싶었습니다.”
5. 글과 영화
『예술, 경계와 관계의 이야기들
나도 그곳에 있습니다.』
화가에겐 그림 그리는 것 외에 즐거움이 둘 있다. 글쓰기다. 화가가 안 되었다면 어쩌면 문인이 되었을지도 모를 만큼 글에 맛이 있다. 때문인가. 주변에는 문인들이 많다. 작년 봄, 화집이자 에세이집이며 동화집인 ‘그린 꽃은 시들지 않는다’를 출간했다. 작업 일기, 명상 동화, 그리고 산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드로잉도 실려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서부터 슬프고 나약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 유년시절의 순수와 젊은 날의 열정, 세상을 보는 따뜻한 눈빛, 대자연의 법칙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숙명, 그리고 철없던 시절의 편린을 부지런히 길러 올리는 지금의 모습까지. 책장들을 넘기는 경계가 없는 이야기들. 술술 읽힌다. 그림을 꼭 빼닮았다. 또 하나의 즐거움은 영화다. 몇 년전 영화칼럼니스트이자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인 김중기씨와 시인, 화가들이??영화, 시 그림을 만나다??란 주제로 모였다. 그들은 필름통에서 함께 영화를 보며 영감을 얻고 영화를 모티브로 한 시와 그림을 창작하며 작품에 대해 서로 토론한다. 화가는 말한다. 영화를 통해 실타래처럼 풀려나온 언어와 색, 선을 함께 교직하는 작업은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 시도였다고.
6. 지금 나는
『내 작업이 여전히 고단하고 강파른 현실을 반영해야 하는
예술가의 시대적,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면
작지만 양지바른 텃밭을 일구는 심정으로
기꺼이 그 짐을 질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내 감성의 창은 늘 슬프고 나약한 것들에게로만 열려있었다. 대의나 명분, 역사나 우주처럼 깊고 큰 것이 아니라 작고 여린 것들에게 향해 있었다. 한동안 예술이라는 관념에 사로잡힌 적이 있었지만 세상 속에 넘치는 웃음과 가벼움에 대해 돌아보고, 현실 속에서 조금만 눈길을 주면 선명하게 보이고 귀 기울이면 들려오는 이야기들과 화해하게 되었다. 물론 속셈은 따로 있다. 내 그림에 담아내는 가벼움과 밝은 미소 끝 어디쯤에는 슬그머니 깊고 묵직한 존재에 대한 담론이 따라나서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그것이다.”
7. 마치다
215호에서 만난 화가의 그림은 우리들 삶을 기쁨으로 희망으로 돌아보게 하는 아름답고도 긴 편지였다. 충분히 따뜻했다.
“따뜻한 그림들, 특히 봄을 계속해서 그려나가고 싶습니다. 그린 꽃은 시들지 않고 그린 봄날도 떠나지 않을 테니까요.”
*화가 이영철
1960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국립 안동대학교 미술학과와 계명대학교 대학원 회화과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으며, 학위논문 <現代사회의 人間 Image에 관한 硏究>와 저서 <구상선언 66, 1·2권>이 있다. 맥향화랑, 갤러리 전 등에서 수회의 초대 개인전을 가졌고 대구아트페어, 서울오픈아트페어, 화랑미술제, 봉산미술제, 호텔아트페어 및 상해, 센다이, 밀라노, 서울, 부산 등 150여 회의 국내외 단체전에 참여했다. 대구문화예술회관, 경주시, 경북대학교병원, 산하종합조경, 호텔 피오레, 홈플러스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으며 웅진, 샘터사, 도솔, 김영사 등의 단행본 50여 권에 표지 및 본문 그림을 그렸다. 현재 한국미협, 대구미술비평연구회, 대구현대미술가협회 회원으로 대구예술대학교에 출강하며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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