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값 이야기
1987년 크리스티 런던지부 경매장에서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 발생했다.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해바라기>가 3,990만 달러(약 400억원)에 일본의 기업가에게 팔린 것이다.
이 가격은 종전 최고가였던 만테냐의 <매기 찬양>보다 무려 세배가 넘는 것이었고, 이 일은 미술품 가격이 빠르게 폭등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이듬해 역시 고흐의 <붓꽃>이 5,300만 달러(550억 원)에 팔렸고 그 후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가 7,810만 달러(790억 원), 반 고흐의 또 다른 작품 <의사 가셰의 초상>이 8,250만 달러(830억 원)를 연이어 돌파했기 때문이다.
동생 테오 외에는 아무도 자신을 알아주지도 않았고 생전에 팔린 그림 이래야 400프랑에 넘긴 <붉은 포도밭> 단 한 점이 유일했던 고흐가 하는 일들마저 뜻대로 되는 것이 없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을 만큼 철저하게 소외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 한다면 현재의 상황은 지극히 당혹스러운 일로 받아들일 만하다.
영화 <괴물>이 전국 관객 싹쓸이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1,300만 명을 모아 창출했던 620억 원이라는 엄청난 금액도 이 단 한 점의 그림 앞에서 할 말을 잃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것 역시 시작에 불과했다.
<의사 가셰의 초상>도 피카소의 <안나 도라의 초상> 9,520만 달러(890억 원), 역시 피카소의 <파이프를 든 소년> 1억 415만 달러(1,040억 원), 구스타브 클림트의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 1억 3,500만 달러(1,300억 원) 앞에 차례로 떠밀려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올해 클림트 또한 넘버원 자리를 내줘야할 위기를 맞았었다. 카지노 개발업자인 스티브 윈이 1997년 4,800만 달러(500억 원)에 산 피카소의 <꿈>을 1억 3,900만 달러(1,400억 원) 라는 사상 최고가에 한 미술품 수집가에게 팔기로 합의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대화중 팔을 심하게 흔들던 평소의 습관 때문에 팔꿈치로 그림에 구멍을 뚫어버린 경악스러운 실수를 저질러 역사적인 사고를 친 주인공으로 해외 토픽에 오르는데 만족해야 했다.
물론 이상의 그림들은 경매에 나온 개인 소장품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세계 각국 미술관의 보물로 자리 잡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미술품들은 이제 그 가격을 상상하기조차 힘들게 되었다.
현재 세상에서 가장 비싼 술인 1787년산 샤또 라피드의 클라레리요가 약 1억 9,000만원 선이고, 가장 비싼 인형 루이뷔통의 테디 베어가 약 2억 2,000만원 그리고 가장 비싼 차인 수퍼카 살린 S7이 4억 7,000만원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정상급 미술품의 가격이 어느 정도 의미를 지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아는 한 예술은 정신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야이고 미술가 또한 현실에 초연한 채 순수한 창작에 몰두해야 한다. 물론 판관은 그 진실 된 가치를 정확하게 꿰뚫어 보아야 하며, 화상은 돈과 예술의 중요한 가치를 혼동하지 말아야 하고 관객들은 한 위대한 작품을 세상 속으로 실어 나른 화가의 고뇌까지 옷깃을 여민 채 감상의 범위에 넣어야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란 어쩔 수 없이 정신과 물질을 막론하고 그 가치를 환금성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 까닭에 예술작품 생산자의 순수한 열정과는 전혀 무관하게 거대하게 부풀려진 미술시장 속에서 가진 자들이 펼치는 그들만의 상업주의 게임 한가운데에 동참하도록 결정되어 있다.
예술가가 순수하게 자신의 삶을 헌신하면 할수록 궁극적으로는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가장 상업적인 시장의 최 정점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분명 모순이다.
예술은 명예를 추구하고 상술은 이득을 추구해야 하니 원하는 것을 나눠 가질 수 있는 둘 사이가 괜찮은 동행이라고만 웃어넘기기엔 예술가와 예술품, 그리고 사회와의 관계를 가볍게 보아버리기 힘들 만큼 이미 미술시장의 판이 너무 커져 버렸다.
이영철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