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로 가는 과거


 살다보면 수많은 그리움이 교차한다. 어떤 것은 이미 지나가버려 아련하다. 추억은 대게 그렇다. 또 다른 그리움은 아직 오지 않아서 설레고 간절하다. 희망과 꿈은 그 쪽에 있다.

 소백산 자락 푸른 숲과 맑은 개천이 흐르는 동네에서 자란 덕분에 자연스럽게 아름다움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는 감성을 익혔다. 작은 풀잎과 이슬, 곤충 하나 놓치지 않고 바라보는 마음이 생겼다.

 도시로 나와서 받은 교육은 좀 달랐다. 유약한 감성은 쓸모없고 부끄러운 자세라고 배웠다. 사소한 것에 눈물 흘리는 것은 남자가 취할 행동이 아니라고 반복해서 들었다. 대신 그 자리에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수리적인 가치가 밀고 들어왔다.

 그러나 이제는 작고 나약한 것은 무가치한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안다. 모든 웃음도 들여다보면 눈물 아닌 것이 없듯이 따지고 보면 그것들 가운데 따뜻하고 아프지 않은 것이 어디 있으랴. 세상에 있는 여린 것들 희생 없이 온 것 또한 없다. 새싹 하나까지도 어미 가지 단단한 몸 찢고 나오지 않던가.

 이 모든 것은 자연으로부터 온다. 자연을 떠난 인간도 없다. 자연은 인간들의 눈앞에 닥친 이익을 위한 희생양이거나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우리는 잘 살아보겠다고 습지와 농경지를 밀어내고 그 위에 콘크리트 구조물을 짓고 들어앉아서 창밖은 여전히 아름다운 전원이기를 희망한다. 온갖 화학물질로 도배된 도시생활 속에서 성공한 삶을 살아보겠다고 앞만 보고 달리면서 식탁에 오르는 먹거리들은 무공해 청정식품이기를 바란다.

  이것은 얼마나 이율배반적인가. 자연을 밀어내면 결국 가장 먼저 우리들 삶의 터전이 역공 당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구제역, 조류인플루엔자, 여러 가지 방사능 구성 물질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과거 시대에는 듣고 보지 못한 위험한 용어들을 일상사로 접하고 있지 않은가.

 과거는 미래를 향해 간다. 바로 지금 여기 이곳에 존재하고 있는 세상 모든 것들이 그 명백한 증거다. 그래서 지키고 보존해야 할 것, 가꾸고 넘겨주어야 하는 소중한 것들이 있다. 작고 낮은 자리는 비탄과 열등감만 키우는 곳이 아니다. 주변을 배려하고 고개만 들면 가장 큰 하늘이 보이는 자리다. 자연과 인간이 아름다운 교감을 하자면 감성채널을 늘 켜 두어야 한다.

 자연과 더불어 사람들이 살 만하도록 서로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만 다가올 그리움도 비로소 현실이 된다고 낡은 시멘트 벽 사이로 고개를 내민 민들레가 말을 걸어온다. 문득 그것이 미래로 가는 과거 중간 지점에 선 우리들이 지키고 전해주어야 할 희망의 정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화가 이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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