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여린 인연의 아픔
앞산 바로 밑자락으로 이사를 한 후 우리 집 말티즈 다솜이가 낯선 환경을 잘 적응하지 못하고 새벽같이 일어나 방 이 곳 저 곳을 돌아다니다가 바스락 바스락 이불을 뒤집고 골목길에 인기척이라도 나면 예민하게 왈왈거렸다. 장난감 구슬을 물고와 내 주변에 쌓아놓고 멤 돌았지만 피곤에 지친 나는 건성으로 녀석을 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날이 새면 아이는 학교로, 아내는 가게로, 나는 화실에 작업하러 나가버리고 녀석은 온종일, 아니 해기지고 밤이 깊도록 혼자서 집을 지키며 우리를 기다리다가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마침내 우울증 증세를 보이기 시작하며 침대 밑이나 옷장 구석에 틀어박혀 먹지도 않고 사납게 으르렁거리며 야위어갔다. 새벽같이 일어나 밤이 늦도록 이런 저런 공부에 시달리는 딸아이도 종일 집에서 빈둥거리는 솜이가 외롭다는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바쁜 일에 쫓겨 지내는 와중에 부지런히 동물병원을 드나드는데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서 모두가 힘겨워했다. 그 사이 집 밖 길고양이는 예쁜 새끼를 다섯 마리나 낳고 자식을 위해 필사적으로 쓰레기통을 뒤지고 다니는 것이 자주 목격되었다. 아내와 나는 할 수 없이 번갈아가며 녀석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부지런히 식빵덩어리나 사료를 가져다주느라 새벽잠을 설쳤다. 그렇게 일은 점점 커져갔지만 그래도 집 안과 밖에서 힘들어하는 여리고 외로운 것들에게 미안하고 가여운 마음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다솜이의 마음병이 쉽게 낫지를 않게 되니 워낙 정이 들고 예민한 녀석에게 함께 놀아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사과를 했다. 그리고 아무리 늦은 시간에 귀가를 하더라도 반드시 솜이를 데리고 동네 골목과 거리를 거닐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마음을 안정시켜 나갔다.
그 와중에 새끼 길고양이들도 제법 자라났는데 불행히도 어느 날 갑자기 두 마리가 사라지고 세 마리만 남았다. 워낙 경계심이 많은 녀석들이었지만 거의 매일 밤 마주치게 되니 주차된 차 밑에서 혹은 어두운 담 구석에서 우리를 지켜보며 서로에게 익숙해져 가기 시작했다. 이 무렵부터 아내는 녀석들에게 사료에다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생선 통조림을 섞어 나눠주었더니 갈수록 경계심을 풀고 집 주변을 멤 돌다가 우리가 귀가하면 쪼르르 나타나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당당이, 바이올라, 여신이라는 이름도 지어준 녀석들과 우리 가족의 만남은 매일 밤마다 행복하게 이어지고 다솜이도 장난기는 물론 식신기질까지 되돌아왔다
그러나 이내 이별의 시간이 왔다. 사정이 생겨 우리가 갑자기 상당히 거리가 떨어진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된 것이다. 남향의 밝은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된 것은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었지만, 당장 눈앞에 닥친 당당이와 바이올라, 그리고 여신이의 먹이를 주는 일이 큰 부담과 걱정거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아무리 불편하다 해도 날은 추워오는데 밤새 굶주린 배로 우리만 기다리고 있을 녀석들을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어서 이사한 날 이후에도 변함없이 먹이를 주러 운동 삼아 먼 길을 다녔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어느 날부터 당당이가 사라지고 대신 다른 녀석이 먹이를 기다리더니 며칠이 더 지나자 바이올라도 보이지 않고 그 자리를 다른 녀석이 차지하고 있는 게 아닌가! 아마 규칙적으로 먹이를 주는 장소란 소문이 난데다가 우리가 이사를 가고 난 후 길고양이 세계의 영역다툼에서 저 작고 여린 놈들이 밀려나버린 것이 분명했다.
약육강식이나 적자생존의 자연의 법칙을 모르는 바도 아니고, 어차피 누가 먹던 배고픈 길고양이가 먹는 것이니 상관이 없을 법도 하지만 우리 가족들의 마음은 아프고 서운했다.
신뢰와 애정의 빛깔을 쉽게 바꾸기 힘든 성격을 탓 한다 해도 어쩔 수는 없다.
생겨난 모든 것들 내가 미워하거나 용서하지 않아도, 증오하거나 미안해하지 않아도, 가여워하거나 사랑하지 않아도 결국 제 스스로의 인연 길 따라 소멸해가는 것이니, 밥 먹고 나면 수저 내려놓듯이, 술 마시고 나면 술 잔 내려놓듯이 그냥 그저 내려놓으라고 배웠다. 나아가 내려놓으려는 이 마음조차 원래는 없는 것이니 지우라고 받아들였다.
그러나 배웠기 때문에 이해되는 것과 삶과 부딪쳐 알아채게 되는 것의 차이는 여전히 쉽게 봉합되지 않는다.
주관과 객관, 추상과 사실, 거부와 공감 사이를 오가는 내 감각세포는 늘 상황에 따라서 그 잣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주 삶이 불편하다. 나아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길 위에 서서 길을 물을 때가 많아졌다. 그리고 내 그리움과 서러움의 정체는 왜 늘 세상처럼 넓거나 역사처럼 깊지 못하고, 대의나 명분에도 비켜선 채로 작고 약해서 여리고 슬픈 것들에게로만 닿아있는지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눈만 감으면 우주가 보이는데 눈을 뜨면 아직 해도 지지 않은 어느 오후의 혼란스러운 술집 풍경처럼 내 마음속에서 당당이와 바이올라, 그리고 여신이 녀석이 아련하게 뛰어다니는 것을 한동안 막을 수 없을 것 같다.
이 영 철 (화가)